마종기문학상 수상, 최하연 시인의 물음표로 시작된 시간

글이란, 때론 가장 조용한 방 한구석에서 시작해 세상의 가장 깊은 여운이 되어 돌아온다. 가을을 적시는 빗물, 한 점 커피의 서늘함, 그리고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이 모여 한 권의 시집, 한 구절의 운율로 태어난다. 2026년, 또 한 명의 시인이 세간의 조용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최하연 시인, 마종기문학상 수상의 주인공. 그의 시는 마치 조용한 물결이 시간의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건드리듯 은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모든 시작점에는 질문이 있었다. 시는 그의 언어가 아닌, 한 인간 스스로에게 던지는 ‘왜’이자 ‘어떻게’의 수많은 여정이었다.

시상식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하와 궁금증, 그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나눴다. 마종기 시인은 그 자리를 빌어 “혼돈의 시대, 시인의 질문이 우리 모두에게 전염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 요란한 답변들로 붐비는 시대에 조그만 질문을 건넨다는 건 가장 담담한 용기이기도 하다. 최하연 시인은 말했다. “시는 무엇보다 제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언뜻 단순해 보이나, 이 한 마디는 오늘 문단을 울리는 가장 깊은 자성의 메아리다. 그는 자신의 시적 여정을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는 시간”이라 일컬었다. 자신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안온함을 깨는 감정의 촉이 결국 그의 시에서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최근 몇 년, 한국 시단은 변화의 물살을 맞고 있다. 젊은 시인들은 생생히 살아 있는 사적 언어와 노골적인 자기 의문으로 ‘감정의 언덕’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최하연의 작품들은 그 ‘뛰어 넘음’보다는 “되짚어 보는 시간”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의문을 품지만, 그 답을 성급하게 내리지 않는다. 비유와 감각, 상상과 고요함이 그의 언어에서 춤추듯 어우러진다. 최하연 시집을 펴들면, 익숙한 일상들이 작은 파편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낯설고 투명한 액체가 된 기분이 든다. 마치 과거의 자신이 무심코 던져 놓은 물음표들이 오늘에 와서야 손끝을 적시는 듯하다.

문학상 수상 이후, 또 다른 시집을 준비 중이라는 그의 자세 역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여느 시인들처럼 문단의 스포트라이트나 찬사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시인이란 삶 위에 던져진 긴장된 질문’이라는 찬찬하고도 결연한 태도를 지녔다. 문학계에선 이번 수상이 단순히 한 명의 신예의 등장이 아니라, ‘내부로의 시선’이라는 유행이 다시금 주목받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친다.

최하연의 시 세계를 “투명한 그물망”이라 부를 수 있다. 그의 시구는 무엇 하나 쉽게 파악되거나, 단박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신 그 언저리에 머뭇거리게 하는 숨겨진 단초들이 있다. 시인의 시선으로 오늘, 혹은 내일을 읽는 독자들은 좀 더 천천히, 자기 안의 물음을 붙들어 보길 원할 것이다. 이것은 단발성 유행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것에 대한 유예의 미학”, 즉 감정이 살아있는 트렌드라는 점에서 현대시의 또 다른 흐름을 예고한다.

한 번 쯤은 우리도 묻는 법을 잊고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질문이 사라진 자리엔 때로 무기력만 남는다. 최하연 시인의 걸음은 그런 점에서 ‘질문하는 삶’의 회복을 꼬집는다. 시가 무언가를 해명하는 언어라기보다, 오히려 더 깊은 의문을 남기는 행위가 되는 시간. 이것이 바로 그가 ‘시는 제게 던지는 질문’이라 한 진의(眞意)가 아닐까. 언젠가부터 해답의 논리로만 채워지던 생활과 마음에, 조그만 파문을 던지는 것. 그 파문 속에서 각자의 작은 진실이 반짝임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란다.

바로 지금, 우리 곁에는 과묵한 감정의 사서와도 같은 이들이 있다. 그들이 전하는 작은 물음표의 가치, 올해 가을엔 꼭 붙잡아보고 싶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