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아시안팝’ 신설, J팝의 도전과 K팝의 부재가 드러내는 동아시아 대중음악 역학
2027년 제69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아시안 팝 퍼포먼스’ 부문이 공식 신설된다. 기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일본 J팝 아티스트들이 대거 후보 입성을 노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2020년대 중후반까지 K팝이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주도했고, 그래미가 K팝을 견제하면서 ‘아시안팝’이라는 별도 부문 신설에 미온적이었던 흐름, 반면 J팝의 글로벌화 흐름이 약진하며 이번엔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지난해 빌보드, IFPI(국제음반산업협회) 등의 집계에 따르면, 일본은 전통적으로 내수 시장이 강했으나 2024년을 전후로 소니뮤직, LDH, 요네즈 켄시 등 해외 진출을 가속화시켰다. ‘BE:FIRST’, ‘NiziU’, ‘JO1’ 등 아이돌 그룹이 영어 싱글 및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다국적 팬덤을 확장, 최근 미국과 동남아에서 공연 매진 사례가 이어진다. K팝 스타들의 그래미 후보 탈락 및 ‘월드뮤직’ 취급에 대한 내부 반발이 식을 새도 없이, J팝이 미국 대형 레이블과 합작하거나 자체적으로 북미 시장에 도전하는 양상이다.
아시안팝 부문 자체에 ‘아시아=비주류, 변방’이란 음악 산업 고질적 시선이 투영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K팝 외 아시아 문화가 환대 받는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작년 BTS, 뉴진스 등 주요 K팝 그룹들이 그래미 불참·탈락을 경험한 반면, 일본계 그룹들의 적극적 마케팅과 현지화 전략은 미국 음반시장이 “제 3의 아시아 파워”의 등장에 더 열려 있다는 방증이다. 이 흐름에 미디어·비평계 반응도 엇갈린다. 로스앤젤레스타임즈, 니혼게이자이 등은 “K팝 이후를 준비하는 일본 음악계의 전략이 먹혔다”고 논평했다. 한국 문화예술계에서는 “K팝이 편견의 장벽에 갇히는 한편, J팝은 시스템 경쟁력과 로컬리티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회의론과 위기의식을 동시에 내비쳤다.
신설 ‘아시안팝 퍼포먼스’ 부문의 영향은 정치적 함의도 있다. 한류의 세계화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었으나, 미국 주류 레거시(정규 부문)와의 간극은 여전하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음반 산업내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역학, 그리고 미·일 간 엔터테인먼트 산업 파트너십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2025년 뒤 중국 음악계도 차세대 걸그룹·보이밴드를 앞세워 동남아·유럽 시장 확대에 나서며, 그래미 노미네이트를 겨냥한 ‘웨이브 2.0’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3국은 대중음악을 신(新)소프트파워 전략의 주요 무기로 삼았으며, 국제적 표준과 현지 대중성, 문화정체성 사이에서 치열한 조정과 경쟁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아시안팝 부문 신설이 K팝의 독점이 아닌 다원적 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이 한류 초창기처럼 ‘독주’하기보다 동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경쟁하는 시장 생태계가 자리 잡는 데 미국 주류 시장의 ‘기준’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중음악 차원의 전쟁은 케이팝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동아시아 문화의 확장, 변동성 신호이기도 하다.
이번 그래미 사례는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권력 잡았다’는 식의 단순한 해석을 넘어, 아시아 음악계 전체가 서양 중심 시스템 내에서 새로운 위치·역할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각국 아티스트별 타깃 시장, 마케팅 모드, 팬덤 정체성이 총체적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에, 그래미라는 세계 음악계 ‘공인’의 문턱은 동아시아 문화표현의 좌표를 재설정하게 할 것이다. K팝, J팝, C팝 간 경쟁과 협력의 시계는 이 지점에서 다시 돌아간다.
— 천유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