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짐’이 왜 지금, 그리고 럭셔리인가

럭셔리의 정의가 다시 쓰인다. 구글 뉴스에 소개된 ‘구겨지고 얼룩진 옷이 ‘진짜 럭셔리’입니다’라는 제목은 트렌드의 변곡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금기나 실수로 여겨졌던 옷의 구김과 얼룩은 이제, 2026년 패션계에서 ‘진짜’ 럭셔리의 증표가 되고 있다. 프라다, 발렌시아가, 슈프림에 이르기까지 최상위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올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빈티지 무드와 실용주의를 팝 아트로 풀어내며 노골적인 ‘구김’·‘얼룩’ 텍스처를 과시했다. 급기야 버버리와 드리스 반 노튼은 일부 컬렉션 의상 표면에 ‘페인트를 튀긴’ 듯한 패턴과, 무심하게 찢긴 느낌의 마감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넣었다.

그 자극적인 변화의 배경에는 Z세대, 밀레니얼의 ‘의도적 방치 미학’이 있다. 스트리트 컬처와 빈티지숍, 그리고 소셜미디어는 오래전부터 ‘있는 그대로’ 스타일(즉, 노필터·노리터치·노포즈)을 쿨함의 상징으로 만들어 왔다. 일이 바빠 구겨진 셔츠를 입는 것이 아니라, ‘손상도 예술’이라는 의미 줄거리 위에서 ‘철저히 스타일링된 구겨짐’과 ‘컨트롤된 얼룩’을 택한다. 시즌 전, 이러한 분위기를 크게 끌고 온 건 프라다의 SS콜렉션에서 드러난 구깃구깃 셔츠와 바지. 이어 루이비통은 일부 오뜨 꾸뛰르 의상에 고의로 타는 듯한 얼룩을 남겼다.

여기서 럭셔리 패션계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유행만 쫓을 때와는 다르게, 이제 더 이상 매끈함·새로움이 곧 고가·고급과 같지 않다는 선언이다. 진짜 부의 상징은 ‘손상’마저 패셔너블로 승화할 수 있는 여유와 자기만의 해석,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개성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이엔드 브랜드의 의도적 구겨짐은 눈에 띄지 않게 세공된 버튼, 비대칭 재단, 낡은 듯한 마감까지 디테일의 극치를 드러낸다.

이런 트렌드는 대중 소비자 관점에서도 시사점이 크다. 한때는 완벽한 무드, 완벽한 스타일이 성공과 여유의 조건처럼 인식됐다. 옷걸이 자국 하나, 이염이나 올이 뜬 니트 하나가 불안하게 느껴졌던 때가 불과 수년 전이다. 그러나 현재 패션 시장에서 ‘구겨짐’은 자기표현의 도구이자, 손때 묻은 스토리텔링의 장치로 읽힌다. 일본과 유럽 젊은 층은 이미 낡은 점퍼·세탁 자국 남은 티셔츠를 당당히 길거리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 움직임과 연결되는 ‘실생활 패션’이 글로벌 SNS에서 #livedinluxury, #crumpledcharm 해시태그로 유행처럼 퍼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면에는 양극화의 단면이 다분히 드러난다. 가격표만 보면 하이엔드 시장은 여전히 ‘누구나 살 수 없는 세계’다. 무심해 보이지만 디자인, 소재, 봉제·워싱·실루엣 설계까지 모든 것에 전략적 디렉션이 들어간 결과물. 요컨대 진짜 ‘구겨짐의 고급화’가 반영된 의상은 오히려 대량생산 의류와 명확히 구분된다. 흔한 티셔츠에 세탁소 자국이 남는 것과, 크리스피한 실크 셔츠에 절묘하게 잡힌 구김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트렌드가 소비 심리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스며들며, ‘편안함 프리미엄’ 혹은 ‘삶의 흔적 담기’로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집 꾸미기, 가전·리빙, 여행 상품군에서도 ‘새것 같지 않은’, 내추럴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생활감이 ‘쿨’한 취향이 된다.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등에서 흔히 보는 ‘빈티지 호텔’ 인테리어나, 집 데코의 삐뚤빼뚤한 손길이 저마다의 추억·개성을 드러내는 방식과 닮았다.

이는 결국, 단순 유행을 넘어 ‘불완전함의 가치’와 ‘자유로움’에 대한 집단적 열망을 반영한다. 완벽함은 너무 피곤하고 피상적이라는, 2020년대 후반 ‘느슨함’과 ‘다름’의 미학. 사회적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경제·사회적 긴장, 환경위기 등 복잡한 현실에서 ‘완벽 코스프레’에 피로해진 소비자들은, 스스로의 자유와 삶의 자국까지 드러내는 진짜 스타일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이다.

패션은 언제나 시대를 반영한다. 오늘의 ‘구겨진 럭셔리’는 의도와 무심함, 손상과 정성을 공존시키는 패러독스 속에서 세련된 ‘개인의 서사’를 완성해준다. 낡은 티셔츠에 깃드는 자신감, 오래된 구두에 스며든 이야기가 자꾸만 멋있어 보이는 지금. 옷장에 쌓인 ‘흔적들’이 곧 스타일의 비밀이 되는 계절이다.

— 배소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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