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개연성’ 발언, 소설과 현실을 오가는 정치언어의 단면

2026년 10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 출판간담회 현장에서 뱉은 한 마디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소설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어쩌다 국가가 이리 망가졌나.” 대통령의 이 발언은 단순히 도서에 관한 잡담이 아니라, 현 정치 현실을 바라보는 비유적 진단이자 정국을 해석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퍼지고 있다. 현장에 참석한 여러 매체들은 대통령의 발언 맥락을 두고서 ‘이례적 직설화법’, ‘지도자의 자기 반성’, ‘현실 정치에 대한 직간접 비판’ 등 다양한 해석을 덧붙였다. 인용된 ‘소설의 개연성’은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상징하는 한 줄 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대통령 본인의 리더십과 국가 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함축되어 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다시금 권력자의 언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수년간 깊어져온 정책 혼선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권에 만연한 ‘설득력 없는 해명’과 ‘이해할 수 없는 결정 과정’에 국민들이 둔감해지거나 체념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유사하게 목격되는 현상이지만, 한국 사회의 경우 교육, 경제, 문화 각 부문에 퍼져 있는 ‘개연성 없는 상황’이 일종의 정상화 단계로 둔갑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실제 올 들어 3차례에 걸친 정책 번복과 인사 문제, 여·야를 막론한 각종 논란, 그리고 사법기관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도저히 현실 같지 않은 장면들이 ‘뉴스’가 되어버렸다. 대통령의 ‘개연성’ 언급은 그 흐름 위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동시에 애증 섞인 한탄을 토로한 것으로 읽힌다.

정치 지도자가 소설, 즉 허구적 상상력과 국가 현실을 나란히 두는 발언은 희소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몇 차례 반복되어 왔다. 1980년대 군정 시기,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들이 체제 밖 이야기를 소설로 읽으며 위안을 삼던 모습, 1990년대 들어선 소설적 상상력이 오히려 신자유주의와 각종 개혁정책을 포장하는 은유로 활용되던 장면들, 그리고 2000년 이후 등장한 ‘정치 드라마’와 ‘팩션’의 유행이 지금까지 “정치는 허구와 다를 바 없다”는 풍자를 낳았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문화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가 직접 창작물을 예로 든 것은 단순한 언변 이상의 시대 진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독서현장과 출판시장의 변화다. 2025~2026년 들어 소설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22% 증가했다. ‘현실을 다룬’ 논픽션과 ‘현실에 분노한’ SF, 정제된 언어로 불확실한 사회를 해부하는 에세이 장르가 급부상하며, 대중은 허구를 현실 속 도구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출판계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개연성 있는 소설’이란 화두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본다. 지금 사회에서 합리와 상식, 맥락의 중요성을 소설적 언어로 치환한 이 선언은, 문화와 정치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 발언 이후 정치권은 즉각적인 반응을 내놨다. 여권에서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라는 평가를 했고, 야권은 ‘책임 전가와 현실 도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쟁점은 2026년 하반기 정치 일정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분위기 및 미디어의 해석, 출판 문화계의 서평 담론과도 긴밀히 얽혀 있다. 전문가들은 ‘개연성’이라는 단어 선택 자체에 정치인으로서의 피로감과 우리 사회 집단적 진실 추구의 한계를 동시에 느낀다. 최근 대통령 직속기구의 정책 자료조작 의혹, 경제·노동정책의 조급한 전환, 그리고 사회 갈등을 소설적인 ‘이야기’처럼 치부하는 행태에 대중은 점점 냉소적으로 변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결국 국민 각자의 ‘이야기 감각’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도, 이 사회의 시민도, 모두 자기 삶의 ‘개연성’을 스스로 물으며 살아간다. 2026년 대한민국, 불확실과 단절, 반복된 실망 속에서도 이미 시민들은 비판적 독자로 현실을 읽어내고 있다. 소설적 상상력이 한 국가의 운명에까지 침투하는 이 아이러니를 보며, 한국 사회는 “왜 이리 망가졌는가”라는 질문 대신, “우리는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라고 물을 때에 비로소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권력자의 언어가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는 때로 무의식적으로 대중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국가의 개연성’이란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증명받아야 할까. 복잡한 정세와 일상을 한 줄 이야기로 풀어내던 작가들의 의문에, 우리 모두가 조금 더 귀 기울일 때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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