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북적이면 뭘 하나 고작 6만원 긁고 떠나는데”…관광객 2000만명 앞둔 ‘K여행’의 그늘

인천국제공항의 청명한 유리벽 너머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그 아래에는 무거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행객들의 실루엣이 길게 드리워진다. 올해 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2000만 명에 근접한다고 한다. 외투 깃을 여미는 이른 겨울 공기가 퍼질수록, 탑승 대기 구역과 환전소에는 더 많은 다른 언어와 표정이 얽혀든다. 하지만 우리 공항의 활기는, 유리창 밖 풍경처럼 맑고 투명하기만 한 걸까.

여행객들, 특히 외국인들의 동선은 대체로 똑같이 흐른다. 명동과 경복궁, 홍대 거리와 강남, 통영이나 경주 같은 전통의 도시를 거쳐가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잠시 커피를 마시거나 간편식을 파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찾는다. 이번 기사는 한국 여행의 겉과 속—그 허전한 간극을 들여다본다. 활짝 열린 하늘길과 요란한 축제, 각박한 생활 속 잠시의 휴식. 그 모든 표면 아래, 관광객 한 명당 평균 카드 결제액이 6만 원 남짓이라는 냉정한 수치가 있다. 여행산업이 재도약했다고 너도나도 말하지만, 정작 해외 관광 수입은 고개를 젓는다. “공항 북적이면 뭘 하나 고작 6만원 긁고 떠나는데”라는 냉소 섞인 한 구석의 목소리는, 코로나 대유행 이후 시민들 삶이 돌아온 활기보다 어쩐지 더 깊은 회색을 남긴다.

여행산업 회복이라는 말은 때론 한 장 짜리 브로슈어처럼 현란하다. 어느 골목마다 세워진 새로운 호텔이며, 사장님들의 밝은 웃음으로 채워지는 숙박업소들, 가을이면 흔들리는 억새와 연등이 부유하는 문화 유적지들도 어느새 북적거림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북적임이 곧, 진짜 경제적 활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의 소비는 다양한 계층과 시간에 고루 퍼지지 못하고, 주로 이미 유명해진 커피 브랜드, 빠르고 저렴한 교통카드 충전에 머무르는 일이 대부분이다. 소위 ‘인생샷’ 명소라 불리는 사진 명당에선 언제나 휴대용 삼각대가 늘어섰지만, 인근 정겨운 밥집이나 오래된 가게에는 이방인들의 발걸음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번 해의 수치는 정직하다. 방한 관광객들이 남긴 신용카드 거래액 평균은 겨우 6만 원가량, 열정적이던 2019년의 반토막이라고 한다. 그 한 줄기 숫자에서 묻어나오는 것은 ‘K여행’, ‘K컬처’가 전 세계적 유행이라는 외침과는 달리, 실질적인 체험과 소비의 너비가 얼마나 얇은지에 대한 체감이다. 한류 드라마, K팝 스타가 불을 지핀 지난 10여 년의 성장 그래프는 화려하지만 그 불빛이 닿지 않는 작은 여행지, 혹은 생활 속 체험 공간들은 여전히 어둡다. 실제로 최근 부산, 광주, 대구 등지 소상공인들은 “관광객 증가는 체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관광 대상 집객에만 힘을 쏟다 보면, 지역 고유의 맛과 멋, 어눌한 영어라도 꾸밈없는 환대를 전하던 소도시의 작은 가게들은 점점 사라지거나 열지 않는다. 국내 북적이는 공간마다 귀에 익숙한 팝송, 번역투의 간판, 대량생산된 기념품만 남아, 한국만의 정취는 점차 잊힌다. 여행객의 발걸음이 머무를만한 여유와, 직접 한국의 속살을 들여다볼 소중한 체험은 줄어들고 있다. 몇몇 도시는 대형 관광버스의 QR코드 투어가 일상이 되고, 실제로 지역민들과의 만남이나 대화는 전시회나 축제 표면을 살짝 스쳐 지나가는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현상은 주변국들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 대만, 태국 등은 전통과 현대, 그리고 체험형 지역관광을 치밀하게 고민한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에서는 로컬 상점, 장인 정신이 깃든 체험 프로그램, 계절마다 맞춤형 소도시 탐방을 강화하며, 관광이 타지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삶과 맞닿은 경험으로 흐르게 한다. 그 결과, 외국인 1인당 카드 결제액이 한국의 두 배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 역시 멋진 호텔이나 도시의 번쩍이는 랜드마크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한국만의 이야기가 깃든 공간, 소박한 골목, 진심이 묻어나는 체험을 다시 발견해야 할 때다.

한국을 찾는 이방인들에게 진짜 한국의 맛과 일상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도심을 벗어난 시골 장터, 따뜻한 목욕탕, 빨간 고추장 냄새 퍼지는 가정식 밥상에서도 충분히 시작될 수 있다. 무심코 비를 피하러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할머니가 직접 만든 식혜 한 잔에 담긴 토닥임을 받는 순간 한국에 대한 진짜 추억이 새겨진다. 이런 경험이 더해지려면 외국인을 향한 맞춤형 홍보, 창의적인 안내 체계,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의 골목 문화와 식탁을 함께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해외 여행이 늘고, 나라인구가 줄어드는 이 시기, 어느새 관광업은 우리 지역 곳곳, 평범한 카페와 오래된 책방, 냄비가 달그락대는 밥집 곁에 자리 잡았다. 2000만이라는 숫자가 자랑이 되는 동시에, 그 숫자만큼 한국 여행의 그늘도 함께 늘어난다. 작은 골목의 고요, 소박한 식탁의 푸근함, 밤거리를 채우는 현지인의 웃음소리에 머물 때, 외국인 관광객들의 지갑뿐 아니라 마음도 열린다. 그리고 그 순간, K여행의 여운은 더욱 짙고 오래 남게 될 것이다.

하예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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