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족 정리’ 상담 급증 현상, 가족의 의미에 물음표를 던지다
‘부모와의 절연’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최근 일본 각지의 상담 창구와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가족 간의 단절, 특히 성인 자녀가 부모와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가족 절연’ 상담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갈등이나 세대차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수년간 반복되는 가족 내 고압적 태도, 경제적 부담 전가, 감정적 무관심, 심지어 폭력에 가까운 친권 행사로 인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결단을 내리고 있다는 데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상담기관에 따르면 ‘가족 정리’라는 키워드로 문의가 폭증하는 배경에는 일본의 오래된 가족주의 문화와 경제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 사회는 ‘이치가야(一家)’라는 이념 아래, 개인보다는 가족 단위의 책임과 연대가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신중년 이후 고용 불안, 고령화, 젊은 층의 비정규직 증가 등 경제적 사회적 위기 속에서 가족 내부의 부담 분배가 심각한 쪽으로 치우쳤다. 특히 취업난과 생활비 부담이 커지며 일부 부모 세대가 자녀에게 의존하거나 자녀의 삶을 통제하는 경향도 깊어졌다. 이는 청년 세대가 개별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려 하는 현대적 가치관과 첨예하게 충돌한다.
이른바 ‘절연 선언’은 일반적으로 대화를 통한 조정 시도가 실패한 뒤, 전문가와의 상담 혹은 법률 자문을 통해 공식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부모와의 공동주소 해지, 경제적 분리, 심지어 연락 수단 차단을 포함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협박, 경제적 착취, 심리적 학대 등으로 인해 자녀가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 청년 중 가족과의 의사소통을 ‘아예 차단했다’는 비율이 10%대 중후반에 달했다. 상담센터 관계자들은 ‘절연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청년층이 겪는 고립감, 사회적 낙인, 경제적 위기 등 2차 피해가 상당히 크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2030세대 일부 사이에서는 ‘부모와 연락을 끊는다’ 혹은 ‘가족 관계의 재정의’가 논의되고 있다. ‘패밀리세라피’ 자문기관을 찾는 이가 꾸준히 증가하는 등 가족 구조 해체 현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 이면에는 청년 취업난, 부동산 가격 급등,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사회 구조적 위기가 놓여 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절연’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족 해체 현상이 전통적 가족의 해체와 동시에, 새로운 가족의 정의·구성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한다. 예컨대 일본의 한 청년(29세, 여성)은 고교 졸업 후 부모의 지속적 간섭과 통제, 경제적 요구에 시달리다 몇 해 전 ‘법적 독립’을 선택했고, 이제는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혈연 중심 가족의 대안 모색이 실제로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족 정리’의 개인적 해방감 뒤에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가족과 절연한 청년들이 경제적 위기를 겪거나, 심리적으로 추가적인 고립감에 빠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내 한 상담센터는 절연 이후 6개월 이내에 우울증, 불안 장애 호소가 2배가량 늘어난다고 밝혔다. 경제적 지원이나 심리상담이 연계되지 않으면 이들이 사회적 약자로, 또 다른 위기의 대상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청년 독립과 사회 복귀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의존도가 높고 1인가구 청년을 위한 실질적 주거·취업·정신건강 지원 예산은 부족하다. 우리 사회 역시 가족 내 갈등을 공론화하기 어렵고, 제3자의 개입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다. 절연이 기초 생활권 보장, 사회적 연대망 구축과 맞물릴 때만이 건강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결국 ‘가족 절연’ 현상은 단순한 가족 갈등이나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급변하는 가족구조, 경제 환경, 청년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우리 모두가 직면할 수 있는 사회적 과제로서, 사회안전망 확충과 가족 치유정책, 그리고 개인에게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연대모형 고민이 절실하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 타인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을 때 그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곱씹어야 할 시점에 있다. 이 문제는 우리 곁의 누군가, 혹은 바로 나 자신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 강지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