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서뭐하게’ 용산 곰탕·을지로 지리산 흑돼지 맛집

늘 그렇듯, 도시의 거리 위엔 점심시간을 살뜰하게 보내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서울은 이른 봄, 미세먼지와 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나지막히 향과 눈길을 나누는 식당들로 꿈틀거린다. 용산의 한 골목 골목, 묵직한 간판도, 화려한 인테리어도 없이 오로지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곰탕집의 풍경이 자리잡는다. 황동 냄비 위로 피어오르는 맑고 뜨겁게 우러난 사골국물, 그 위에 놓인 부드러운 양지와 고소하게 씹히는 고명들. 내부는 미닫이문과 고르지 않은 나무 탁자, 출입구 옆엔 진열된 수십 년 묵은 양념통과 세월의 때가 그대로 스며든 에나멜 벽이 공간을 따뜻하게 감싼다.

아침부터 우려내기 시작했다는 국물의 깊이는, 한 모금 후 미세하게 올라오는 단맛과 바람 같은 피로 덕에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곰탕 한 그릇 속에 담긴 일상과 한국인의 정서, 그 식당의 벽면엔 단골들의 사연들이 끄적으로 남아있고, 식사를 마치는 손님들은 ‘남겨서 뭐하게’ 하며 그릇까지 깔끔히 비워낸다. 이곳이 가진 따뜻함은, 계절과 시대를 초월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포근한 품을 실감하게 만든다.

을지로 좁은 골목길 끝자락, ‘지리산 흑돼지’ 간판 아래 줄이 길게 이어진다. 이른 저녁, 퇴근 무렵이면 흑돼지의 굽는 소리와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의 고단한 하루가 섞여 들어간다. 불판 위로 올려지는 흑돼지는 마블링이 도드라진 선홍색으로, 직접 숯불에 굽는 순간 지방에서 맑은 육즙이 살아오르고, 옆자리 손님들까지 숟가락을 멈추게 할 만큼 고소한 냄새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겉은 진하게 그을리고 속은 촉촉, 탱글하게 살아있는 식감이 인상적이다. 을지로의 이 공간에는 사람들의 대화,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까지 어우러져 시간마저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최근에는 SNS와 유튜브의 영향으로 서울 곳곳의 음식점이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입소문만으로 자리를 지켜온 곳에는 한결같이 변함없는 진심이 담겨 있다. 용산 곰탕집도, 을지로의 흑돼지 식당도 유행이 아니라 오래된 취향과 추억, 사람냄새를 좋아하는 이들에 의해 이 도시 위에 고요히 남는다. 다양한 세대의 손님들은 긴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 느린 시간 속에서 그들만의 리듬을 다시 찾는다.

곰탕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오래 담겨 있고, 흑돼지엔 자연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스며든다. 입 안에 오래도록 남는 국물 맛, 불판 위에 지글거리는 고기의 온기. 그 모든 ‘남김없는’ 식사의 끝엔 오늘 하루를 함께 위로하는 진솔함이 곁들여진다. 기자로서 단순히 미식의 풍경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라는 문화적 경험에 대해 한참을 천천히 걷듯 기록해보고 싶었다.

각 음식점 주변에서는 이제 젊은 예술가, 여행자, 동네 주민들까지 소란스럽지 않는 일상 속 소박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곰탕집의 문을 나서며 마주치는 옛 사진첩 한 장, 흑돼지집 창문 밖으로 내리는 봄비까지 낡은 풍경과 따뜻한 식탁이 하나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별다를 것 없는 한 끼일지라도, 한 번쯤은 이런 풍경 속에서 식사의 의미, 공간의 온기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 싶다. 언젠가 서성이며 함께했던 식당을 머릿속에 오래 담아갈 것이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남겨서뭐하게’ 용산 곰탕·을지로 지리산 흑돼지 맛집”에 대한 6개의 생각

  • 곰탕… 흑돼지… 다 좋은데 맨날 이런 집 찾으러 다니기 힘듦🤔 솔직히 맛은 걍 평균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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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탕이 주는 따뜻함, 요즘에는 더 귀해서 소중하죠. 다음에 꼭 들러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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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탕 국물보다 더 진한 건 대기줄이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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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이런 기사 보면 배고파짐… 이 시간에 예약 불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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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고파도 이 줄은 못 선다 ㅋㅋㅋ 나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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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ger_voluptatem

    을지로 맛집은 늘 신문이나 방송에서만 화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가면 웨이팅 줄 어마어마하고, 현지인보단 관광객이 더 많아서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는 게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고기 굽는 냄새랑 골목의 소음이 한데 섞이던 그 분위기는 진짜 서울만의 정서 같습니다🤔. 곰탕도 그렇고, 흑돼지도 그렇고 결국 사람냄새가 결정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런 기사 보면 한 번쯤은 일부러 길을 돌아서라도 들르고 싶어지는 마음! 또 한편으론, 점점 옛 맛집들이 사라지는 현실도 안타깝네요. 부디 오래 살아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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