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서로의 밥그릇을 위한 연대에서 이기적 ‘내 몫 챙기기’로
민수 씨는 20년째 한 제조공장에서 일해왔다. 늘 출근길에 만나는 동료들은 지난 겨울, 고된 교섭 끝에 겨우 임금 인상을 받아냈다며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 ‘비정규직’인 정아 씨는 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업무를 해도 임금 인상의 기쁨과 동떨어진 삶을 이어간다. 내 밥그릇만을 위해 차가워진 목소리, ‘함께’라는 이름이 점점 수그러드는 현장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2026년 봄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 한복판에 ‘종말’이라는 단어가 서성인다. 80~90년대 창문을 박차던 민주노조의 함성은 낮아졌고, 연대와 정의를 부르짖던 파업대오는 위태로운 분열을 겪는다. 노동조합 입구에는 ‘내 밥그릇’ ‘우리 쪽 몫’이란 문패만 점점 커진다.
지난주 금속노조 김재훈 지회장은 “임금·복지 인상 투쟁엔 아직 쟁취의 의지가 있지만, 사회연대적 의제나 불평등 문제엔 현장 동지들이 등을 돌린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파업 참가자 수는 역대 최소치를 기록했고, 파업 양상 대부분이 “직군 이기주의”에 함몰된 모습이다. 심지어 같은 정규직 내에서도 노선, 연배·직군별로 상생보다는 ‘더 얻기’의 계산기가 우선한다.
조연희 보육교사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대다수 경력 보육교사도 올해 전국단위 파업에선 완전히 배제됐다. 수도권 일부 만 참가해도, 지방엔 소식조차 없다”며 박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임시직·비정규, 지방·중소기업 노동자는 노조의 의제에서 점점 더 소외되는 현실이다. 청년 노동자들은 “어차피 내세울 힘도 없고, 목소리가 묻히기 십상”이라며 냉소를 보낸다.
공공기관, 교통, 물류 현장 등지의 대형 파업 소식도 예전만 못하다. 중소 핀테크 기업 김용태 씨는 “메이저 노조가 자기들 몫만 붙잡고 싸울 때, 우리 같은 업체 노동자는 응원의 손길조차 들이밀기 어렵다”며 “단결보다는 각자도생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산하의 한 중견기업 노조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 의제엔 ‘내가 왜 저걸?’ 분위기가 강해졌다. 단체교섭도 ‘우리 부서 몫 챙기기’가 핵심 목표다”라고 자조한다. 실제로 2025년 말~2026년 초 타임라인을 보면, 노조별 파업 안건의 78%가 임금·근로환경 보장 등 자사 직원 중심 요구였다. 사회 전반 제도 개선, 취약계층 위한 연대 요구는 5% 미만이었다. ‘연대의 함성’은 희미해진 채, 각자 살아남기 위한 외침만 남은 셈이다.
이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경제 위기와 생활비 상승, 정체된 임금, 고용 불안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는 중산층조차 내일을 확신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동료라 해도 같은 명패 아니면 ‘경쟁자’로 여길만큼 일자리는 위태롭다. 이런 현실이 뒤섞여 ‘더 챙겨야 산다’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공동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내 몫 챙기기’에 집중하지 않는 목소리는 ‘손해를 감수할 필요 없다’는 무언의 경쟁 논리로 가로막힌다.
밖에서는 노동운동에 대한 피로감과 냉소 또한 높아졌다. 시민들은 파업 때마다 불편함을 토로하고, 뉴스 댓글엔 ‘자기들만의 리그’ ‘밥그릇 싸움’ 등의 단어가 쏟아진다. 한 시민은 “생활 한 켠에 쌓인 불만을 노조가 대변해주긴커녕, 더 큰 소리를 내니 거리감이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 쌍둥이 아빠 이영석 씨도 “파업으로 출근에 불편 겪으며, ‘대체 누구를 위한 투쟁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이야기에 숨은, 쉽지 않은 사정도 있다. 오랫동안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온 이들은 경쟁의 벽에 갇혀 서로 등을 질 수밖에 없는 순환의 늪에 빠져 있다. 한 택배 기사에게 “연대나 사회적 권익 확대가 뭐냐”고 물으면, 그는 “내달 무사히 넘기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가족 부양부터 미래 준비까지,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연대의 가치보다 생존의 무게’가 더 크다.
이에 더해 각종 정치적 이슈·노조 내 갈등이 지속되면서, 노동운동은 방향타를 잃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모 대기업 비정규직 해고 소송이나, 산재 보상 사각지대 이슈도 현장에서 생생하게 드러났지만, 대중적인 연대나 미조직 노동자 지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곳에는 각자 할당된 ‘몫’만을 둘러싼 냉혹한 선명함이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의 관계망’은 개별화·파편화되며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1인 자영업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노동조합들의 유연한 대응은 부족하다. 시대의 변화에 한 발 늦은 투쟁, 좁아진 시야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노동운동’을 자기 일상과 동떨어진 정파적 퍼포먼스로 여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귀기울여야 한다. 내 밥그릇을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 그러나 조금 더 손을 내밀어 ‘우리’라는 이름을 다시 되새길 수 있을 때, 진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힘든 마음을 감싸 안는, 작은 연대에서 출발하는 내일이 필요하다. 80년대 거리에 울려 퍼지던 그 외침처럼 말이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노조끼리 싸우다 서로 다 망하겠네요 ㅋㅋ 현실 참 씁쓸합니다.
밥그릇 싸움이라더니 진짜네. 다들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 하겠지.
다들 자기만 챙기다 결국 다같이 무너집니다ㅋㅋ 왜 그걸 못 느낄까요
이 기사처럼 서로 소외되는 분위기가 계속되면 진정한 노조 정신은 점점 잊힐 것 같아요. 다같이 힘내자는 말, 이제 낯설게 느껴집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