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 사전예매 37만 돌파, 현장에서 본 대한민국 극장가의 새로운 물결
극장가 스크린 앞, 무더위를 피한 관객들의 행렬이 근 한 달 간 멈춤 없이 이어진다. 13일 저녁 서울 시내 대형 멀티플렉스관. 영화 ‘호프’ 사전예매 수치가 단연 돋보인다. 37만. 푸른 불빛이 출입문을 비추는 로비, 예매처 앞 모니터엔 ‘매진 임박’ 노란 경고가 팝콘 광고를 잠식했다. 올해 들어 개봉한 영화 중 최고치다. 관람객들은 팝콘 박스 하나, 음료 하나씩 쥔 채, 거대한 포스터를 배경 삼아 인증 사진을 남긴다. 이 장면만으로도 ‘호프’의 흥행 바람이 실감난다.
‘예매 37만 돌파’라는 실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2026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계가 위축과 활기로 교차하며 고전하던 시점. 코로나 엔데믹 이후 첫 ‘여름 대작 대전’ 붐이 제대로 살아난 것은 8~9년 만의 일이다. 통로를 빠르게 스케치하듯, 어디서나 ‘호프’를 입에 올리는 관객들 목소리가 들린다. ‘어제 친구가 강추했다’, ‘라디오에서도 난리’라는 대화, 퇴근길을 재촉하다 극장으로 발길을 돌린 셋이 “주차 어플로 자리 남았나?”를 확인한다. {
이 대작의 몰입감, 그리고 웅장한 예고편. 호평 릴레이는 종교처럼 번졌다. 누군가는 “이 영화 아니면 극장 올 일이 없다” 말했지만, 반면 또 다른 이는 “과대광고 아니냐?”는 시선을 곁들인다. 실제로 각종 포털과 영화 리뷰 커뮤니티에는 팬덤을 뚫고 나온 냉정한 반응이 보인다. ‘아직 뚜껑 안 열렸다’, ‘전작보다 약하다’는 신중한 우려도 평행선을 그린다. 37만이라는 선점의 숫자, 올해 최고라는 타이틀 모두 아직은 결과물이 아니라, 시작의 신호탄으로만 비출 뿐이다.
그래도 현장 기자 카메라의 시선으로 본 이날의 극장 내부, 강렬한 흥분감은 분명했다. 실시간 예매 속도가 초속 30석을 넘어서며 인기 블록버스터의 뒷심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극장 측 관계자는 “평일 오후 프라임 타임에 90% 좌석이 이미 예매됐다”고 전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자료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7월 둘째주 박스오피스 예매율 1위, 기타 개봉작들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VOD 플랫폼 강세, 집콕 문화로 힘겨웠던 오프라인 극장산업이 ‘호프’로 반전을 시도한다.
업계에선 ‘호프’의 흥행이 무더기로 쏟아질 여름 대작들의 조기 레이스에 신호탄을 쏘았다는 분석이다. 다음 주 개봉을 앞둔 ‘리버스’와 ‘명월’ 등도 사전예매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이런 흥행 바람이 얼마나 이어질지, 변동성은 여전하다. ‘연령층별 예매 편차’, ‘지역 따른 상영관 쏠림’ 등 불균형 신호도 관측된다. 단순히 숫자 싸움이 아닌,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입소문 지속 여부, 극장가의 재정적 체력까지 여러 변인이 관객 몰이 흐름을 좌우한다.
현장서는 10대와 20대 관객들이 특히 적극적이다. 예매 플랫폼의 실시간 채팅방에선 “본 예고편만으로도 눈물났다”, “배우 OOO 연기가 찢었다”는 과장된 반응도 타이밍 맞춰 쏟아진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같은 SNS 해시태그도 200만 회를 넘겼다. ‘호프 챌린지’로 불리는 간단한 밈 패러디 영상들이 일종의 팬덤 바이럴을 일으키고 있다. 티켓 포토북부터 커스텀 굿즈까지 SNS 인증 열풍이 확장된다. 이 신드롬에 대해 문화평론가 이민아씨는 “영화 한 편 흥행이 마치 대형 콘서트 이벤트처럼 변한 한국 특유의 문화”라 해석한다.
흥행에 대한 환호 이면엔 걱정도 공존한다. 스크린 독점 논란, 특히 지방 소규모 상영관들의 경쟁력 약화 우려가 재점화됐다. 실제 일부 지역에선 ‘호프’ 한 편 때문에 심야·조조 영화 상당수가 사라졌다는 불만이 터진다. 지방 소상공인 자영업자, 극장 종사자들이 직격탄을 맞는 것이다. 반대로 영화사와 투자사, 멀티플렉스 대기업은 ‘3분기 V자 반등’을 노린다.
‘호프’가 보여준 사전예매 37만의 기록은 결국 2026년 한국 극장 산업이 어디로 가는지를 가늠하는 현장 신호다. 고무적인 도전임과 동시에, 팬덤 중심 흥행과 다양성 사이의 줄타기가 앞으로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관객의 시선은 계속 따라 붙는다. 스타 마케팅·SNS 챌린지·대규모 굿즈 이벤트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 유통 방식이 올해 들어 처음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길어진 여름밤, 스크린 앞 줄 선 이들의 열기와 기대감, 그 생생한 공기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영화라는 문화적 사건을 둘러싼 경쟁과 환호, 논란 끝에, 예매 37만의 이 숫자가 어떤 서사의 시작이 될지, 카메라는 계속 극장 한복판을 응시한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