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경멸’ 감독, 프로듀서, 작가 그리고 그의 눈부신 아내 (장 뤽 고다르 감독,1963)

경멸. 단순 명사. 명확한 시선. 장 뤽 고다르는 이 한 단어 제목에 모든 걸 담았다. 1963년작 ‘경멸’(Le Mépris)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본질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제작자, 감독, 작가 그리고 애증의 관계. 브리짓 바르도가 연기한 폴린. 그녀의 존재 자체가 한 편의 예술. 빨간색 소파. 파란 하늘. 흰 타일. 초록 풀잎. 고다르는 색채마저 인물처럼 다룬다. 장면마다 대비. 눈에 확 들어오는 프레임. 시각적 파격. 심심할 새 없이 바뀌는 구도. 종이로 자른 듯 각 잡힌 컷. 시각적 이야기가 무심하게 흘러간다.

고다르는 이 영화를 통해 영화 산업의 종말, 작가의 위기, 상업적 예술의 모순까지 한 번에 잡았다. 프로듀서(잭 팰런스)와 감독(프리츠 랑), 각본가(미셸 피콜리) 그리고 그의 아내. 네 인물만 두고 보면 단순 스토리. 현실은 아주 복잡하다. 돈과 욕망, 예술과 사랑 모두 난장판. 한마디로 다 꼬였다.

영화는 느리다. 한 장면이 수분간, 대사 없는 침묵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침묵은 텅 빈 게 아니다. 현미경처럼 인물들 심리를 쪼갠다. 고다르 특유의 대사 컷. 거칠지만 날카로운 각도. 애써 드러내지 않는 격정. 폴린(바르도)은 화사하면서도 불안하다. 남편과의 거리감이 화면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치정과 실망, 사랑과 연민, 경멸. 스펙트럼이 점층된다. 고다르가 인물 중심 서사를 해체하고, 영상으로 감정 선(線)을 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트러스 빛 레이어. “너 왜 날 사랑하지 않아?” “사랑은 이미 지나간 감정이야.” 이런 식의 다이얼로그. 짧은 문장, 의미심장한 정적. 손끝까지 문장의 무게가 찍혀있다.

1960년대 프랑스 사회 분위기가 배경. 자본과 창작. 문화산업의 내면적 위기. 폴린을 둘러싼 남성 셋. 사랑과 예술이 양립할 수 없는가. 고다르는 답을 내지 않는다. 영화는 전장이고, 거울이다. 한 시대의 초상이다. 그림처럼 정지된 화면도 있지만, 공간의 활용이 대단하다. 로마 외곽 빌라, 밝은 하늘과 차가운 벽, 실내의 침묵과 야외의 먼 풍경. 시각적 대비를 통해 무력감, 소외, 슬픔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누벨바그의 정점이라 불린다. 해체, 실험, 반(反)상업주의. 가장 혁신적인 프랑스 감독 고다르의 대표작. 대중영화의 공식 위에 실험영화가 포개진 느낌. 음악과 컷 편집, 일상적 대사가 오묘하게 어긋난다.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빨려든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관객을 튕겨낸다. 일부러 만들어진 거리감. 이게 바로 고다르 스타일. 감정의 갈증을 일부러 남겨두는 이야기 방식. 끝없이 해석하게 만든다.

1963년에 나왔지만 지금 봐도 파격이다. 당시엔 브리짓 바르도의 노출 수위가 화제였고, 제작사와 감독, 배우 간의 긴장도 컸다. 촬영 중 꾸준히 이어진 고다르의 즉흥적 대본 수정. 배우들마저 각자가 무슨 감정인지 헷갈릴 정도. 하지만 그런 불안정함이 고다르 영화의 매력. 예술영화의 불친절. 관객은 계속 물음표를 품게 된다. 관계가 어긋나는 장면마다, 누가 누구를 경멸하는지 끊임없이 변한다. 제목대로, 경멸이 모두를 지배한다.

비주얼만큼 OST도 압도적. 조르주 들루뤼의 테마곡. 나른하면서도 슬픈 선율. 영화의 침묵 사이에 퍼진다. “경멸”은 본질적으로 불협화음의 미학. 정교하게 설계된 우울. 삶과 예술의 거리를 보여주는 프레임. 2000년대 이후 영화감독들도 계속 인용하는 ‘교과서적 구도’가 여기서 완성됐다. 넷플릭스, 유튜브, 숏폼 시대에 다시 보는 “경멸”. 긴장감과 루틴이 공존하는 명작.

사람들은 질문한다. ‘이게 정말 영화로서 재미가 있나?’ 조금은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편의 영상 시(詩)를 보는 느낌. 고다르는 관객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깊이, 중의성, 아이러니. 색채, 침묵, 눈빛 하나까지 계산된 연출.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경멸로 바뀌나?’ ‘예술은 과연 자유로워질 수 있나?’ 거대한 직설적 메시지 대신, 단순하고 감각적인 한 장면. 색, 공간, 침묵의 조합. 그게 ‘경멸’의 진짜 미학.

이 영화, 지금 봐도 궁금하다. 창작자와 소유자의 경계,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오해, 만들어진 경계선을 고다르는 영화라는 도구로 허문다.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영화 팬들에게 자극을 주는 핵심 작품. 장 뤽 고다르 특유의 건조함과 새로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경멸”은 영화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거대한 거울. 고다르가 만든 가장 시각적이고, 가장 고다르다운 영화다.

— 남도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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