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힙 딸내미’ 영파씨의 귀환, 힙합 걸그룹이 던지는 물음
국내 힙합 신의 새로운 물결을 예고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힙 딸내미’라는 별칭으로 이미 주목받아온 영파씨(YOUNG-Pa씨)가 오는 10월, 새 힙합 걸그룹의 중심으로 컴백한다. 최근 관련 보도에 따르면 영파씨가 속한 신생 걸그룹은 기존 K팝 아이돌 형식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과 이야기를 담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주된 특징이다. 이는 가요계에서 힙합이 주류로 자리잡은 오늘날에도, 온전히 여성 힙합 그룹으로 규모 있는 시도를 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던 맥락에서 더더욱 눈에 띈다. 글로시하고 통제된 아이돌군단 중심의 주류 음반 시장에 ‘자기 목소리’를 가진 인물들이 모여 팀을 꾸린다는 전언은 문화계 내부에도 여러 함의를 던진다.
영파씨는 유년기 시절부터 직접 곡을 쓰고 무대에 올라온 이력이 많다. 본명이 강윤진인 그는, 2022년 ‘Show Me The Money’의 틀을 비틀어 여성 참여자를 앞세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신예 랩퍼들과 콜라보레이션을 꾸준히 이어오며, 그간에는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경계에 머물렀다. 이번 프로젝트는 예전처럼 솔로씬이나 크루가 아니라, 명확하게 ‘아이돌’의 타이틀이 달린 채 조직적으로 기획된 여성 힙합 그룹이라는 점이 다르다. 가요계 힙합씬에서는 가변적인 팀과 프로젝트가 흔했지만, 10대~20대 초반의 ‘신생’ 여성 뮤지션들이 한솥밥을 먹는 ‘팀’을 이루는 경우는 손에 꼽힌다.
이 그룹의 출범은 변화하는 K팝 시장 흐름과도 맞닿는다. 최근 2~3년 사이 국내 가요계는 스타일리시한 퍼포먼스와 애매한 장르 크로스오버가 대세였다. 걸그룹 역시 ‘걸크러시’, ‘틴크러시’ 등 수식어와 함께 상업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했다. 다만 정통성 짙은 장르 실험, 특히 여성 힙합팀 결성은 SM, HYBE, JYP를 포함한 메이저 소속사에서도 ‘위험부담’이 크다고 여긴 탓에 시도조차 적었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여성 랩퍼/보컬 혼성 유닛은 많았으나 ‘걸그룹’이 힙합을 그룹 전체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예는 찾기 어렵다. YG, AOMG 등 힙합 기반의 기획사조차 글로벌 정통 걸그룹에 비해 힙합 여성 그룹은 소수정예 체제에 머물렀다. 업계에서는 이번 영파씨 프로젝트가 얼마나 대중과 평단 모두에 호소할 수 있을지, 그리고 동시대 음악 산업 트렌드를 읽는 바로미터가 될지 주목한다.
영파씨가 소속된 신생 힙합 걸그룹은, 멤버별 퍼스널리티와 과거 음악 커리어, 그리고 무엇을 ‘걸그룹’의 정의로 볼 것이냐라는 논점을 다시 불러온다. 기존의 걸그룹 성공 공식은 표준화된 외형·안무·컨셉트와 빼어난 군무, 광범위한 글로벌 타깃팅에 있었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 대중은 각기 다른 세계관과 캐릭터로 무장한 신인 아이돌들을 동시에 소비한다. ‘힙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문화적 자율성, 직설적 언어, 서사적 가사를 중시하는 반면, 기획된 아이돌 시스템은 제품의 완성도와 대중성, 극대화된 비주얼 퍼포먼스를 닮았다. 이번 영파씨 팀은 두 세계관의 경계선에 선 셈이다. 재능 중심의 영파씨와 동료들이 아이돌 씬에 낼 목소리는, 곧 국내 음악계가 실험하는 신선한 도전의 일부로 읽힌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 그룹의 음악적 성격만이 아니다. 멤버들이 각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본인의 에피소드와 감정, 현실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자작곡을 발표하겠다는 예고도 있다. 이는 오랜 기간 남성 중심이던 국내 힙합씬에서 여성 뮤지션, 특히 아이돌 포지션 여성들이 절실히 원한 자율성의 실현이다. 2010년대 초반 ‘언프리티 랩스타’류의 경연 프로그램이 일회적 신드롬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이번 영파씨의 메시지는 일상성·청춘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리며 진정성 있는 장르 해석을 시도한다.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팀은 무대뿐 아니라 SNS·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데일리 라이프’ 공개, 소속사 기획단계부터 멤버 간 주도적 협업 등 다양한 실험에 도전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음악 산업이 더 이상 통제와 포맷만으로는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셈”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시장의 보수적 시선과 상업적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힙합 기반 걸그룹은 일반 대중에겐 여전히 낯선 장르다. 랩이 주축이 될 때 대중성이 흔들린다는 우려와, 기존 걸그룹 팬덤 중심의 소비 흐름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최근 세계적 음악 시장은 다원화·파편화 양상이지만, 동시에 강한 팬덤층 형성과 안전한 기획 노선이 공존해왔다. 영파씨 그룹의 성공 여부는, 결국 팀 특유의 서사와 멤버별 개성, 그리고 얼마나 폭넓은 공감대 확보에 성공하느냐에 달렸다. “기획형 아이돌”, “아티스트-드리븐”이라는 오랜 이분법 사이에서, 신선한 실험이 시장 안착으로 이어질지, 한정적 호평에 그칠지 음악 및 대중문화계가 주목하는 이슈임은 분명하다.
이번 데뷔는 신진 여성 뮤지션에게 더 넓은 기회와 롤모델을, K팝 팬덤에게는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누구보다 ‘내 이야기’가 중요한 시대, 대조적 색깔과 목소리를 가진 이들의 등장과 그 이후 행보가 어떤 대중 인식 변화를 만들어낼지, 그리고 국내외 음악계에 얼마나 신선한 파장을 전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번 팀의 첫 걸음에 많은 청춘과 음악팬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