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선의 그림책 서평] 지렁이 겨드랑이는 어디에?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함께 그림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독서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최근 출간된 그림책 『지렁이 겨드랑이는 어디에?』는 제목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은 지상선 작가 특유의 유머와 탐색적 호기심으로,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질문 ― ‘지렁이에게 겨드랑이가 있을까?’ ― 를 출발점 삼아, 아이뿐 아니라 어른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무엇보다 이 그림책이 제기하는 놀이는, 우리가 얼마나 세계에 대해 고정된 틀로만 생각해왔는지를 되묻게 한다. 실제로 최근 유아동 출판계의 데이터(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6)에 따르면, 저연령층 도서 트렌드는 단순 전달이 아닌, 관찰과 질문, 자기만의 해석을 격려하는 방향으로 이행 중이다.

『지렁이 겨드랑이는 어디에?』의 구조는 짧은 문장, 심심하게 보일 수 있는 소박한 그림, 그리고 울퉁불퉁한 지렁이 캐릭터가 반복되며 시작한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이 이어진다. 하루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사회 한복판에서,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쉽게 외면했던 자연의 존재감이, 지상선의 시선을 거치며 낯설고 재치 있게 다가선다. 그림책 속 지렁이에게는 당연히 겨드랑이가 없고, 겨드랑이가 없다 보니 간지럼을 태울 수도 없다는 설정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존재의 특수성―즉, ‘나와 다의 존재’의 가치에 대한 메시지로 읽힌다. 이 같은 접근은 실제로 다문화나 다양성 교육, 생태 인식 교육에서도 책임감 있게 활용되고 있음을 출판계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질문을 던지는 통로로서 그림책의 표현 방식을 십분 활용했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이 그림책을 통해 무엇에 호기심을 갖는지, 혹은 어른들에게는 어떤 삶의 리듬이 내재되어 있는지, 그 배경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지상선 작가는 이전 작품들(『고양이 컵』, 『엄마는 다 계획이 있지』 등)에서도 아이 특유의 발상과 직관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해 왔다. 이번 신작 역시, 실제 저자의 가족 혹은 주변 인물들이 영감의 원천임을 알 수 있다. 그림책의 무심한 듯한 배경―흙, 풀, 작은 곤충들―은 우리 일상과 전혀 분리되지 않은 공간임을 일깨운다. 2026년 들어 주목되는 현상 중 하나는, 유아동 그림책 독자 상당수가 부모 세대와의 ‘책 읽기 공유’를 원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평범한 소재와 일상의 소품을 중심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웃고 물으며 생각을 확장하게 만드는 그림책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지렁이라는 생물 자체는 흔히 지나치기 쉬운, 혹은 썩 매력적이지 않다고 여겨졌던 대상이다. 그들과 우리의 신체 구조를 비교하는 이 책의 접근은, 인간 중심적 시선, 또는 인식의 한계를 슬쩍 들춰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맥락이 최근 강화된 생태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팬데믹, 이상기후, 탄소·생태 위기 등 사회 전체가 ‘숨어 있는 가치’와 ‘차이’의 의미를 물어보기 시작했다는 흐름과 맞물린다. 그림책이 의도적으로 지렁이의 당위성이나 필요성, 환경 내 역할에 대해 교훈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은 오히려 울림이 크다. 아이다운 태도, 세상에 대한 질문을 주저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인간 사회에도 유의미함을,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후엔, 길가에서 마주치는 작은 생명에 대해, 새삼스레 한 번 더 시선을 내리우게 된다.

한국 아동문학 및 그림책 출판계에서 지상선과 같은 창작자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 5년간 그림책 분야의 신진 작가 등단률, 독립 서점과 그림책 전문 북페어 증가 등이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확인된다(대한출판인협회, 2025년 12월). 이는 다변적인 사회에서 ‘숨어 있던 질문’을 꺼내고, 가족과 개인, 또 공동체가 함께 생각할 거리와 놀이를 찾는 추세로 읽힌다. 특히 ‘알 수 없는 것과 모르던 것을 수용’하는 능력이 곧 창의적 시민성을 기르는데 중요하다는 현장 전문가 진단도 뒤따른다. 지상선 작가의 내공은, 유행이나 일시적 화두에 기대지 않고, 아이와 어린 시절의 본질적 경험으로 돌아가 질문을 회복하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은 물론, 어쩐지 ‘얌전한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도 이 책은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

작지만 생명력 넘치는 질문 한 줄, 사소해 보이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선. 오늘의 그림책 『지렁이 겨드랑이는 어디에?』는 일상의 풍경과 감각을 되짚게 만들며, 내 주변과 타자의 ‘다름’을 긍정하고 사유하는 힘을 선사한다. “지렁이에게 겨드랑이가 있다면,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잡다한 교훈이나 눈에 띄게 드러나는 메시지 없이, 조용히 ‘함께 바라보기’의 경험을 제안하는 점에서 이 책은 2026년 한국 사회가 다시금 필요로 하는 태도, 그리고 가족 공동체 내 소통 방식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 부모와 자녀는 물론, 자신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가만히 흔들리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이 그림책은 충분한 질문과 사색을 남긴다. 인간 중심성이 흔들리는 시대, 익숙함의 낯섦을 새삼 포착하게 된 오늘날, ‘지렁이 겨드랑이’는 하나의 화두로 우리 곁에 머문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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