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직원들과 지역사회가 함께한 ‘상호공감 콘서트’의 의미
음악이 주는 공동체적 교감의 가치는 평범한 일상 속 조직에도 따뜻하게 스며들 수 있을까. 최근 강원도청에서 마련된 ‘상호공감 콘서트’가 그 실험의 장이 됐다. 이 자리는 일선 행정직원, 도민 대표, 그리고 강원도 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음악인들이 한 데 모여, 음악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시도였다. 기사에 따르면 이 행사는 단순 관람형 콘서트가 아닌, 도청 직원과 도민이 무대를 함께 만드는 상호 소통의 축제였다.
기대와 호기심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주최 측이 강조한 점은 ‘벽 없는 음악’이었다. 참여하는 직원들은 각 부서의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관객이자 무대 주인공으로, 음악인들은 자발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장르 또한 트로트부터 인디, 전통 민요와 클래식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세대와 취향의 경계를 허물었다. 최근 지자체 중심의 문화 프로그램들이 흔히 보여주는 행정주도형 ‘체험’이 아닌, 진정성 있는 교감에 방점을 찍은 듯한 분위기였다.
행사의 무게감은 도정 내외의 시선 변화를 유도했다. 코로나19 이후, 행정기관 내 구성원들 사이의 일상적 소통이 위축되었고, 지역사회와의 거리는 더 벌어졌다. 익명성 높은 조직 내 피로감, 도민과 공무원 사이 간극이 대두되는 가운데 공개형 음악 콘서트라는 외연적 해법이 선택된 데에는 이곳만의 맥락이 있었다. 2020년대 중반, 지역소멸 위기와 청년층의 타지 유출이 심각한 강원도에 일터-삶터를 잇는 공동체적 활력을 찾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콘서트는 ‘소속감의 장벽’을 넘는 문화적 촉매로서, 행정조직도 일방적 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현대적 지역공동체 일원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꿈을 구체화했다.
비슷한 시기, 다른 지자체도 지역 직원, 도민이 함께 만드는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잇따라 도전하고 있다. 광주시, 의정부시 등에서는 2026년 들어 내부 공무원 문화동호회 공연, 일반 시민 등참형 페스티벌을 실험한다. 실제로 수도권과 달리 인구 및 예산 한계가 뚜렷한 비수도권에서는, 이 같은 ‘자기참여-상생형’ 행사가 사회 다양한 갈등 완화, 구성원 심리적 안전감 강화, 공동체 만족도 제고에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의 이번 콘서트 역시 이러한 흐름 안에서 도전한 지역문화 실험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눈여겨볼 변화는 참여자 구성이다. 공연자 일부가 초기엔 공개 무대에 부담감을 나타냈지만, 리허설을 거치며 편안한 응원과 소수 관객의 박수 속에서 오히려 자존감과 동료애를 확인했다는 소감도 이어졌다. 이 과정은 직원 개별의 고민, 도민의 기대, 음악인의 예술적 목표가 뒤섞이는 진솔한 자리로 확장됐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정조직 문화의 변혁 가능성을 점친 신호탄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참가자 중에서 자연스레 나왔다. 업무 스트레스 해소보다 더 큰 ‘공감의 실험실’ 역할을 담당했다는 뒷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같은 상호작용의 힘에서 비롯된다.
한편, 최근 ‘공공조직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일부 비판적 시각도 있다. 예산 불필요 지출, 전시성 홍보행사, 기껏해야 짧은 ‘힐링’ 제공에 머문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그러나 강원도 사례는 자율성과 현장성이 두드러졌고, 내부 직원뿐 아니라 지역 청년, 예술계 등 외부 구성원의 직접 참여를 통해 관성적 행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역 일터에서의 상호공감 강화가 조직의 혁신, 사회적 연대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실제적 거점이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근 UN이 제시하는 ‘공공 섹터의 심리적 안전성’ 강조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이 작은 콘서트는 문화예술과 행정, 지역공동체라는 세 가지 축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새로운 시대적 고민을 공유하고 해법을 실험하는 공간이 됐다. 누구나 ‘일’을 하며 때로는 소외된 감정을 마주한다. 그 벽을 허무는 매개로 음악이 쓰일 수 있음을 강원도 청사는 화려하진 않아도 꾸준히 보여준다. 텅 빈 대강당이 밝아지고, 누구는 어설프게 기타 줄을 튕기고, 또 누군가는 낯선 동료의 노래에 어깨춤을 추는 풍경—여기에서 조직, 지역, 그리고 한 사람의 일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길을 우리 사회 모두가 배워가는지도 모른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