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안톤 허, 박경리문학상 ‘우리이음상’ 수상…문학의 다리 놓는 이들을 주목하다

문학 번역의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재조명을 받는 가운데, 한국 문학의 세계화 현장에서 의미 있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경리문학상 특별상 중 하나인 ‘우리이음상’이 미국계 번역가 안톤 허에게 수여됐다. 2026년 10월 6일, 박경리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안톤 허가 영어권 세계에 한국 문학을 알리는 데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안톤 허는 1981년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계 이주민 자녀로 성장했다. 그는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한강의 <소년이 온다>, 정보라의 <저주토끼> 등 다수의 한국 현대문학 작품을 탁월한 문장력과 세밀한 감수성으로 영어로 옮겨왔다. 특히 <저주토끼>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한국 소설 번역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허의 번역은 원작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영어권 독자의 언어와 감각에 맞춰 리듬과 이미지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국내외 비평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박경리문학상은 2011년 제정된 이후 세계 각국의 작가뿐 아니라, 문학의 가치와 확산에 기여한 이들을 폭넓게 기린다. ‘우리이음상’은 번역·출판 등 문학 나눔에 헌신한 이들을 위한 특별상이다. 번역은 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치부돼 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수상은 비단 한 명의 성취를 넘어 그동안 소외된 문학 생태계의 일꾼들에 대한 사회적 조명을 의미한다.

번역가로서 안톤 허가 이룬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원작의 사회적·정서적 배경을 절묘하게 건너뜀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상처와 새로운 희망까지도 세계 독자에게 전달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민 2세의 정체성 혼란과, 서구 문단에서 소수자로 느꼈던 한계를 한국 소설 번역 작업에 적극적으로 녹여온 것으로 평가된다. 허의 번역은 단순한 문장 옮기기가 아닌, 작품의 맥락과 숨은 긴장감을 전달하는 ‘재창조적 매개’에 가깝다.

출판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영어권에서 번역·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 수가 60여 종을 넘는다. 그중 상당수는 안톤 허를 비롯한 젊은 번역가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허가 번역한 <피프티 피플>, <소년이 온다>, <저주토끼> 역시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강렬하고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영어권 비평지마다 한국 사회의 역사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번 소식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번역가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 때문이다. 오랜 기간 번역가는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은 조력자 혹은 ‘그림자 작가’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세계 문학축제나 수상 시스템에서 번역가 조명이 강화되는 흐름이 보인다. 우리이음상도 이런 인식 전환 위에 등장했다. 영어권 출판사 관계자들은 “이제는 작가와 번역가가 동등한 창작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하며, 안톤 허의 사례를 높이 본다.

국내 번역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문학의 글로벌 진출은 결국 번역가의 섬세하고 폭넓은 소통 역량에 달려 있다”며 “원작에 대한 깊은 존중과 문학적 야망이 만났을 때 비로소 국경을 넘는 감동이 산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내에서도 번역, 출판, 국제 교류의 가치가 재조명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계는 박경리문학상의 우리이음상 선정이 앞으로 국내외 문학 생태계에 새로운 동력을 줄 것으로 내다본다. 나아가 비(非)한국인 번역가, 이주민 후손들의 역할 역시 분명해지고 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한국문학을 접하는 세계 독자층을 다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의 수상 역시 글로벌 시대 ‘문학‧정체성‧언어’의 새 지형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박경리문학상은 오는 10월 15일 강원도 통영에서 시상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안톤 허는 특별상 수상 연설에서 “번역은 소통을 향한 용기”라고 소회를 밝혔다. 본상은 일본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에게 돌아갔다. 두 수상 모두 동아시아 문학의 다양성과 연대를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사라져서는 안될 이름들, 비로소 환하게 조명받는 순간이 있다. 감추어진 곳에서 문학의 바다에 다리를 놓아온 이들의 노고를 알리는 것, 그리고 그 사회의 문화적 깊이가 진정 드러나는 곳은 바로 이런 자리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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