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불암, ‘국민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에 흐르는 추모의 물결
10월 30일,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상징 중 한 명인 배우 최불암이 별세했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빈소에는 영화‧드라마 업계는 물론 정계와 문화계 인사들까지 끝없이 발길이 이어졌다. 이름만 불러도 한국적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온기가 전해지는 인물, 그리고 ‘우리의 자랑’이라 불릴 만한 배우의 마지막을 기리는 이정표 같은 순간. 현장에는 ‘한국이 잃은 국민적 존재’에 대한 현장의 애도와 존경, 그리고 인생의 무게 이면의 씁쓸함까지 교차한다.
최불암은 단순히 유명인이나 ‘베테랑 배우’를 초월하는, 시대와 매체를 뛰어넘는 우리 대중의 정서 아이콘이었다. ‘전원일기’에서 보여줬던 그 소박하면서도 근엄한 아버지상, 따뜻함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리더의 이미지는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낸 수많은 이들에게 일종의 보편적 집단 무의식으로 남아있다. 기자로서 수많은 감독과 배우, 작품 세계를 만났지만, 최불암처럼 ‘시대정신’ 한가운데 자리한 배우는 흔치 않다. 그의 연기는 의미를 뛰어넘어 세월의 인장을 새겨놓았다.
빈소에 모인 연예계 동료 배우들, 감독, 그리고 정계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입을 모은 건 ‘인간 최불암’의 품격이다. 돈과 화려함, 정치적 굴곡이 교차하는 연예계에선 드물게, 한결같은 소탈함과 유머, 후배에 대한 따뜻한 시선까지 ‘사람’ 자체가 작품이었다는 회고가 줄을 이었다. 드라마 ‘수사반장’, ‘전원일기’ 등 한국 TV 역사에 남은 굵직한 작품들의 장면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동시대 한국의 시공간을 표상한다. 이른바 ‘최불암 스타일’—과장 없이, 본질을 파고드는 미니멀한 감정 처리와 평범함 안에 숨겨진 깊은 인간다움—은 오늘의 후배 배우들에게도 여전히 주요한 참고점이다.
이번 조문 행렬은 단순한 유명인의 죽음이 남긴 공허함 그 이상이다. 상실의 자리는 바로 ‘공감’과 ‘치유’라는 대한민국 문화의 핵심이 빈자리로 남겨진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OTT와 글로벌 콘텐츠의 약진, 산업구조와 시청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오늘에도 국내 대중은 여전히 ‘최불암’ 같은 배우, 즉 진정성에 기반한 연기와 서사의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갈망한다. 기자가 최근 만나본 여러 현장 감독과 배우들 역시 OTT시장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인간미, 그리고 이윤만을 좇는 제작 시스템의 삭막함에 깊은 우려를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안타까운 작별에는 희망 역시 잠들지 않는다. 최불암이라는 이름을 이 시대 집합적 정서의 일부로 남긴 것, 그리고 빈소에 함께한 이들이 나눈 회상, 눈물, 소박한 농담은 곧 그의 유산이 쉬 사그라지지 않으리란 함의를 가진다. 또 한 번 우리는 잃음의 순간에야 ‘무엇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자문하게 된다. 최근 고인의 대표작들이 다시 각종 플랫폼에서 재조명되고, 젊은 배우들이 그의 연기법을 되새기는 장면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근본적 가치와 패러다임에 대한 재질문이다.
정계 인사들의 추모는 일견 상투적이지만, 대한민국 문화예술이 사회적 통합과 위로의 기능을 어떻게 가졌는지, 정치‧사회적 담론 바깥에서 ‘국민적 인물’의 상실이 가진 정치적 무게까지도 고요하게 드러낸다. 그러기에 다양한 계층, 연령, 직군의 이들이 빈소에 모여든 이 장면은 ‘엔터테인먼트의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의 본질이 가장 앞에 놓여있음을 환기시킨다.
끝으로, 지금 이 조문 행렬과 사회적 애도의 물결이 단순히 ‘과거로의 향수’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최불암의 사라짐은 단순히 한 세대의 종언이 아니라 잊혀가는 가치, 즉 누구나 사랑받고, 공감받을 수 있는 연기와 사람이 있는 세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그 자체다. 그가 남긴 소박하고 강건한 미소, 그리고 쉼 없는 연습과 자기성찰은 후대의 배우와 제작인에게 더욱 절실한 길잡이다. 잊음과 변화의 시간 속에서, 우리 문화의 본령을 다시 되새길 순간이 지금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