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할수록 비싸다?” 2027 트렌드는 ‘의식적인 불편함’의 재발견
불편함이 사라져야 진짜 제대로 된 소비라는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됐다. 2027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편리한 것을 사랑하지만, 적어도 패션·라이프스타일 씬에서는 ‘불편할수록 좀 더 근사하다’는 공식이 은근하게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출간된 트렌드 분석 서적들은 물론 글로벌 브랜드의 2027 S/S 프리뷰를 살펴봐도, 너무나 손쉽고 익숙한 것보다 ‘시간이 걸리고 신경 써야 소화 가능한 것’에 더 많은 값이 매겨지는 현상이 심심찮게 보인다. 마치 가죽 대신 천연 리넨, 플리스 대신 울, 굽 없는 운동화 대신 비뚤어진 포인트 힐처럼. 가만 보면, 이 불편함들은 단순 불편이 아니라 ‘수고로움’과 ‘과정의 자부심’으로 읽힌다.
이런 흐름이 패션에 좌표 찍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착용과 관리의 불편함을 일부러 드러낸 의상이나 액세서리. 첼시부츠처럼 손쉽게 신는 신발보다 정성 들여 묶는 레이스업 부츠, 단추나 집(지퍼) 없이 오로지 탑 스티치로만 고정된 코트, 손에 꼈다 뺐다를 반복해야 하는 아트워크 형태의 귀걸이. 고객들은 이런 ‘애쓴 표정’에 더 합리적으로 지갑을 연다. 2026년 국내 타임·메종키츠네 등 여러 프리미엄 브랜드의 리미티드 라인은 의도적으로 주름이 지는 실크, 물빠짐에 취약한 코튼, 어렵게 가공한 드래핑 디테일을 내세웠다. 가격도 훨씬 더 나가는데도, ‘노력해야 내 것’이란 콘셉트에 오히려 구매자가 몰리는 현상.
책을 한 권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독서가 만연한 2020년대 중후반, 굳이 종이책을 읽으려면—무게도 부담, 페이지도 번거로움. 그런데 소장가치라는 프리미엄은 그런 불편함에 더해진다. <불편할수록 빛나는 것들> 같은 에세이나 비즈북도 ‘불편함을 직면하고, 차별화된 선택을 하는 대가’라는 테마를 곧잘 건드린다. 인터뷰한 트렌드 워쳐 역시 “경험적 곤란이 부(富)의 상징이 되는 패턴, 예전 명품 핸드백 사러 몇 시간씩 줄 서던 시절 돌아온 느낌”이라고 귀띔한다.
패션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 WGSN, 국내 롯데백화점 리테일혁신팀 등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는다. 단순히 값이 오르고, 소비자만 불편해지는 게 아니라 ‘노력, 희소성, 공예성’이 브랜드·제품의 차별화 공식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빅 브랜드와 젠지(Gen Z)의 워너비 브랜드 사이에서 폭넓은 소비자들이 ‘손이 더 가는’ 소재·디자인·스타일에 더욱 큰 가치를 매긴다는 것. 다시 말하면, ‘책임 있는 소비’까지도 챙길 수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현상에는 피로한 현실도 한몫한다. 세상 모든 것이 자동화·간편화되는 와중,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에서라도 ‘내가 특별히 노력해서 얻는 가치’를 찾고픈 심리가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단순한 독특함, 기발함이 아니라 ‘조금은 의식적으로 불편해지는’ 경험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대표적 브랜드인 마르니(Marni), 비즈빔(Visvim) 등을 포함해서, ‘공예적 완성도’나 ‘소수에게만 열려있는 착용 난이도’가 오히려 구매를 촉진하는 트리거가 된다.
이게 정말 트렌드 맞냐고? 물론 모든 소비자가 그렇진 않다. 다수는 여전히 ‘더 쉽고, 더 저렴한’ 것을 고르긴 한다. 하지만 마이크로 트렌드로 불편함이 프리미엄화되는 이 그림은 K-패션, 글로벌 파인 주얼리, 신진 디자이너 컬렉션 등 곳곳에서 확인된다. 좀 더 심층적으로 보면, 이런 변화 속에는 지속가능성 이슈도 관통한다. 싱글유즈, 패스트패션의 반대편에서 ‘오래 쓰고, 오래 신경 쓰는’ 소비 행태가 명확히 힘을 얻는 중인 것.
이 지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불편함이 무조건 미덕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단순한 불편’을 넘어, 직접적 경험과 뒤따르는 만족감—즉 스토리텔링이나 소유 가치, 자기 만족을 증폭시킬 수 있어야 이런 프리미엄이 살아남는다는 것. 이른바, 체감하는 수고에 돈을 지불한다는 문화. 불편의 영역이 단순 불편을 뛰어넘어 ‘의미 부여’와 ‘유행의 한 방식’으로 확장된 풍경, 2027년, 트렌드의 시계는 확실히 새롭다.
이제는 더 효율적이며, 더 빠른 것만이 멋진 게 아니다. 길고 복잡한 단추, 어렵게 관리하는 핸드메이드 니트, 직접 손질해야 오래가는 구두, 두 손이 꼭 필요한 책 한 권—“편함보다 불편함이 피어낼 수 있는 가치에 더 귀 기울여볼 시즌”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 흐름은 단순히 ‘패션’이라는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들이 원하는 ‘더 특별한 진짜 내 것’이라는 갈증까지 슬며시 건드린다. 이것이야말로 2027년, 패션이 던지는 질문. 불편할수록 진짜 멋진 걸까? 당신의 선택이 곧 기준이 되는 세상, 재미있지 않은가.
— 오라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