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기소 특검, ‘공소취소 조항’ 제외했어도 남은 재판개입 논란
2026년 11월, 사법개혁을 둘러싼 또 하나의 큰 논쟁이 국회와 시민들의 일상에 파고든다. ‘조작기소 특검’ 법안이 공소취소 조항을 제외한 채 통과를 앞둔 이 시간, 법정의 공기와 누군가의 인생이 뒤흔들리고 있다. 사건의 초점은 단순히 법조문 몇 줄을 덜고 더하는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대한민국을 관통해 온 사법 신뢰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의의 무게,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닿는 국가 권력의 성질에 관한 이야기다.
사건의 발단은 조작기소 의혹이라는, 법과 검찰 그 자체에 대한 못내 지울 수 없는 불신이었다. 어떤 이는 ‘한 검사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다’는 두려움에, 또 다른 이는 ‘특별검사가 온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느냐’는 회의에 몸을 떨었다. 심지어 피해 당사자는 매체 인터뷰에서 “진실이 밝혀져도 나는 이미 잃을 대로 잃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법은 사람을 지키라고 만든 것이건만, 제도가 간혹 그 울타리를 스스로 허무는 기이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이번 특검 법안의 주요 쟁점은 당초 포함됐던 ‘공소취소’ 조항에 있었다. 기존 형사소송 절차에서 공소를 취소하는 권한은 검찰의 독점이었다. 그것이 어느 순간 특검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발상은, 좋게 보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었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 심판의 삼권분립 원칙 위에 세워진 헌법적 질서, 즉 재판 독립의 대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거셌다. 다행히 이번 최종안에서는 논란이 컸던 해당 조항이 빠졌다. 하지만 법조계, 그리고 전직 재판관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다. 특검이 재판 경과를 예의주시하며 별도의 견해를 내는 순간, 그 영향은 법정 안팎에 실질적으로 행사될 것이란 의심 때문이다.
한 중견 판사는 “진실 규명을 위한다지만, 특검의 움직임 자체가 재판부를 옥죄는 압력이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여러 차례 사법농단‧기소쿠데타 논란에서 확인된 것처럼,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재판 절차의 온전한 독립이 절실하다. 반면, 국회 주변에서는 전혀 다른 온도가 읽힌다. 한 초선의원 보좌관은 “공소취소는 포기했지만, 이미 여론심판은 시작됐다”고 말했다. 시민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대다수는 ‘특검제조차 신뢰 못하면 대체 무엇을 하란 말인가’라며 허탈을 토한다. 진보진영의 일부 시민단체는 이번 조치를 불가피한 공정 보완장치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정치적 보복전쟁의 파생물 아니냐”는 쓴소리가 공존한다.
한편, 여론의 물줄기는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다. 기소권 남용에 상처받은 당사자들은 특검의 실질적 역할 강화와 재판 개입 논란 사이에서 갈등한다. 증거 조작, 사건 은폐, 불기소 처분 남발에 절망했던 가족의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검찰청 앞에서 ‘진실 규명’을 외치지만, 그 진실조차 권력의 논리에 따라 희미해질 때가 많다. 반대로 일선 법조인들은 “심증만으로 진실을 휘두르면 결국 애꿎은 피해자가 또 생긴다”며 신중을 주문한다. 약한 사람 목소리가 법정과 제도 모두에서 충분히 반영되는가—김민재는 언제나 이 묵직한 질문 앞에서 머문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직접 지난해부터 대구 ‧ 부산 ‧ 수도권을 돌며 사법농단·조작기소 피해자와 수사팀, 재판부를 인터뷰했다. 피해자들은 ‘내 인생을 바꾼 한 통의 기소장’을 얘기하며 말끝을 흐리고, 일부 검사는 “특검도 결국 권력일 뿐”이라고 회의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한 사회복지사는 “진실은 절차가 지켜질 때만 힘을 가진다”고 단언했다. 이번 조항 삭제가 사법정의의 후퇴가 아닌, 모두를 지키는 발판이 되려면 국민의 신뢰를 외면하지 않고 보완하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 누구는 다시 싸우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누군가는 사법제도에 마지막 기대를 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우리 사회가 한 사람의 억울함을 진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의지, 그리고 그 울분과 상처를 법이 보호할 실질적 방법을 끝없이 고민하는 자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의 논리가 아닌, 사람의 치열한 이야기가 제도의 뿌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특검 논쟁은 특별검사제라는 제도 자체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틀어진 정의, 부서진 신뢰, 그리고 무거운 사법농단의 교훈 위에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한 법을 만들 것인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오늘도 법정 밖에서는 ‘내일’의 정의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고통의 언어로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논란이 인권과 신뢰라는 공동의 과제를 고민하는 사회적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