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예산안 합의, 제도적 안정 신호인가 한시적 휴전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회에서 여야가 2025년도 예산안을 합의 처리한 데 대해 ‘모범적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파행적으로 흐르던 정국 속에서 국정의 중추인 국가 예산이 정해진 시한 내에 통과됐다는 사실은 의미가 작지 않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 입장에서 예산안 처리가 정쟁과 거리를 두고, 제도적 안정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매년 강대강 대치가 반복되는 가운데 이번 예산안 합의는 한국 정치에 적잖은 시사점을 남겼다”고 전했다.

이번 합의는 일각에서 완전한 협치보다는 ‘타협에 의한 안정’이라는 평가도 병존한다. 실제로 여야 모두 주요 쟁점 예산 항목을 놓고 상당한 이견을 노출했으며, 결과적으로 상임위 단계를 거쳐 본회의 막판 대타협이 이뤄졌다. 여권 핵심은 “대통령실과 당이 꾸준히 대화를 주도하면서 절충점을 마련했다”고 밝혔고, 야당 관계자도 “교착 장기화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경제위기 인식이 발빠른 협상 동기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그리고 그 전해와 비교하면 불필요한 정쟁이 상대적으로 줄었으나, 표면 아래 매끄러운 합의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분석 역시 많다.

이번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특징은 여야 모두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갈등 노출을 자제하려 했다는 점이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여당도, 야당도 민심의 풍향계가 예산안 표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여론을 크게 의식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이 합의의 배경이 일시적 정치 계기인지, 제도적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데 정부 내 신중론이 크다.

예산안 본질로 돌아가면, 정부안의 큰 골격이 유지되면서 사회간접자본(SOC), R&D, 복지 예산 다수 분야는 원안에서 미세한 조정에 그친 반면, 농어민 지원 등에서 일부 야당 요구가 반영했다. 이에 대해 재정당국 관계자는 “대규모 증액이나 정부안의 취지 훼손 없이 협치했다”며 성공적 협상이라 자평했으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만성화된 재정 적자 구조에 대한 우려를 놓지 않았다. 경제정책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복지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지만, 성장·혁신동력이 흔들릴 경우 재정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적 의미에서 이번 합의는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대통령실의 의중과, 잠정적인 민생 합의를 도출하려는 야당 지도부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라는 평가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여야 간 정국 대치는 거의 상시화됐다. 대통령실 한참모에 따르면 “국민 피로감이 매우 높아, 정부도 타협적 해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야당 지도부는 여권의 양보 폭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적 계산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정치적 이해가 단기적 합의로 수렴할 수밖에 없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 계기는 부재했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이와 관련, 복수의 전직 고위관료들은 “예산안의 시한 내 통과는 헌정의 기본이지만, 협의 과정의 투명성과 결과의 책임성 강화 없이는 같은 파행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 예산 심사 과정에서 비공개 협상, 특정 이익집단 반영 등 제도적 허점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가 책임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기술적 측면과 관련해, 최근 ‘디지털 정부’,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항목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정부는 “핵심 예산안 원칙은 그대로”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래 전략산업 투자 부문에서 충분한 의지가 반영됐는지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정책 영향 분석 결과, 중장기적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범부처 협의체의 상시화, 엄정한 예산 집행 평가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이번 예산안 합의는 정치적 안정과 민생 배려라는 명분 아래 발생한 촉진제라 할 수 있으나, 협치와 제도적 개혁의 본격화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통령실과 국회 간 견제와 균형, 그리고 정쟁이 아닌 건전한 정책 경쟁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냉정한 시각과 추가적 제도개혁 논의가 요구된다. — 박지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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