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상실, 한 의사가 말기암 앞에서 남긴 건
말기암에 걸린 한 내과의사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러닝화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매일같이 뛰었던 그였지만, 병세가 깊어질수록 ‘그때 왜 그 운동은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점점 커진다고 했다. 의학지식과 삶의 경험이 결코 그때의 선택들을 완벽하게 해줄 수 없었다는 회한. 그리고 러닝,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이 남긴 위안과, 끝내 해내지 못했던 근력운동의 부재가 남긴 아쉬움. 이 의사는 “달리기만으론 막을 수 없는 게 있다”며, “근육은 나이를 막론하고 인생 후반전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근력을 잃으면 인간은 삶의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잃게 된다. 환자가 건강을 환전하는 마지막 순간, 걷는 힘은 단순히 이동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존엄성을 의미했다. 그는 운동의 진짜 목적이 ‘병의 예방’보다는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것에 더 가까웠다는 깨달음을 전했다. 여러 연구와 해외 논문, 실제 암환자들의 임상 사례에서도 비슷한 교훈이 나온다. 유럽종양학회와 미국암학회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유산소 운동 뿐 아니라 근력운동 조차도 말기 암환자의 삶의 질 개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예전에는 무조건 안정을 권하던 분위기에서 “움직임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하는 쪽으로 세계적 추세가 변하고 있다. 의학적 조언은 운동의 종류와 강도, 환자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바뀌었지만,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는 ‘움직임의 지속’이다.
우리 사회 어르신, 특히 암과 같은 만성질환을 겪는 환자들을 만나면 환자 본인도, 가족도 불안 속에 스스로 움직이길 극도로 꺼린다. 그러다 보니 암 자체의 고통이 아닌, 침대에 오래 누워 근육이 빠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건강이 더 급격히 나빠지곤 한다. 한 사회복지사는 “최종적으로 화장실을 스스로 갈 수 있냐 없냐, 가족들이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돌볼 수 있느냐를 가르는 것이 바로 근력”이라며 현실을 전한다. 실제로 암 치료의 힘겨운 여정 중, 고통을 견디는 힘, 짧은 외출이나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을 손수 다녀올 수 있는 힘 모두가 근육에서 나온다고 한다. 건강의 중요성을 머리로 안다고 해서, 노년이 됐을 때 몸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실제 삶의 무게에서, 누군가의 지극히 평범했던 ‘러닝’이 마지막 순간을 버텨주지 못한 안타까움은 무겁게 다가온다.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입원암환자들의 경우 평균 1주일 만에 하체 근력이 최대 10%까지 빠진다”며, 침대에 오래 눕는 시간이 더 무섭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통증에 눌려 아예 멈춰서는 순간’부터 모든 신체 시스템이 눈에 띄게 쇠약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음악을 듣고 걷기, 작은 무게로 간단한 근력운동을 반복해주는 것만으로도 회복력이 달라지는 것을 임상 현장에서 수도 없이 목격했다고 한다. 요즘엔 항암치료 중이라도, 적정한 맞춤 운동이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지속력을 높인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 옥스포드대학 연구진에서도, 근력운동 병행 그룹이 5년 생존율에서 유의미하게 앞선다는 통계가 발표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의료인력 부족, 제도 미비, 가족 부양부담 등 복합적인 문제로 암환자의 ‘안전한 운동’을 돕는 시스템은 아직 취약하다. 발달장애인, 치매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많은 이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중증환자의 딸은 “어머니가 사소한 운동이라도 해보고 싶어하셨지만, 전문적 조언을 구할 길이 없었다”며, “간혹 인터넷에서 본대로 따라 했다가 오히려 다칠까봐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최근 몇년간 일선 복지관이나 병원에서는 ‘의료-운동 연계 프로젝트’가 일부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돌봄의 마지막, 비로소 눈에 밟히는 것은 결국 건강, 그 중에서도 근력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달릴 수 있었을 때의 소중함, 일상적 움직임이 마지막 순간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미 많은 환자와 가족이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의료계, 복지 현장, 그리고 우리 각자 모두가 기억해야 할 건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삶”이라는 평범한 진리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 레이스에서 우리는 어떤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당장 오늘 저녁 단 5분이라도 내 몸을 일으켜 근력 운동을 시작하는 것. 그 작은 실천이 먼 미래에 또 다른 존엄과 용기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덜 아프도록, 우리 모두의 현재와 노년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암환자 가족도 운동시켜야 하는 현실ㅋㅋ 참 아이러니하다, 누워만 계시는 부모님 보며 오늘부터 스트레칭 붙잡음. 우리나라 의료정책도 좀 달라져야 할듯?
솔직히 건강할 때만 운동 얘기 실감나지… 병 들고 나면 다 늦음. 가족까지 같이 움직일 때 관리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