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왜 비행기는 50년째 시속 900km로 날까···기계비평가, ‘속도’를 다시 묻다
‘기계비평’이라는 독특한 시선에서 현대 문명을 되짚는 저자 고기탁은 이번에도 ‘속도’라는 키워드를 무심히 내달리다 잠깐 멈춰 세운다. 비행기는 왜 수십 년간 기술이 진화했음에도 여전히 속도에는 정체를 보일까. 속도에 대한 인간의 열망, 그리고 기술적 한계와 사회경제적 변수 등 다층적 맥락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저자의 질문은 직설적이지만, 그 해석은 섬세하다. 연료, 소음, 안전같은 기계적 조건과, 속도 자체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의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역설. 동시에 자본과 시간, 인간의 삶이 이 속도의 한계에 미묘하게 교차한다는 통찰은 인상적이다.
비행기가 50년 이상 900km/h 언저리에 머문 데에는 사실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콩코드의 파국적 실패, 환경 규제, 운영비용 등 경제 논리와 정치적 결단이 동시에 작동했던 현실. 저자는 여기서 단순히 기술사(史)가 아닌, ‘기계와 인간의 공생 속도학’으로 전환한다. 영화 감독이 특정 앵글의 반복에 집착하는 이유를 따지듯, 고기탁은 왜 산업은 변함없는 속도에 집착하는지를 묻는다. 변화의 거대한 곡선에서 속도가 멈춰서 있는 것을 오히려 해체적이고 창조적인 시선으로 해부한다. 이는 단순한 과학 비평서가 아니다. 서구 문명 안에서 시간과 효율, 안전이라는 담론이 어떻게 꼬여있고 속도와 동맹을 맺어왔는지를 사분사분하게 파헤친다. 우리에게 익숙한 ‘더 빨라져야 한다’는 세속적 신념에, 한 뼘의 쉼표를 찍는다.
사실, 시대마다 속도에 대한 인간의 감각은 영화적 몽타주처럼 뒤따라왔다. 산업혁명 이후 기차에서 자동차, 인터넷, 초고속 교통수단까지, 인간은 늘 더 빠름을 욕망했다. 그러나 비행기만큼은 달랐다. 기술적으로는 더 빠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현 상태에 머무른다. 저자는 ‘테크노-이데올로기’로 설명한다. 기술의 공적 의지와 사적 자본, 사회적 요구가 접목되는 지점에서, 오히려 혁신이 아닌 보수성이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OTT 산업에서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화질이나, 글로벌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이 어느 순간 느려짐, 혹은 이전 속도를 고수함과 비슷한 결이다. 가장 효율적인 속도가 산업에 가장 적합한 속도일까.
작품을 넘나드는 저자의 안목이 돋보인다. 저자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예로 든다. 무한 가속의 유혹에서 벗어나 ‘상대성’이라는 세계관을 제시한 그 영화처럼, 기술 또한 현실적 필요와 물리적 한계 안에서 길을 찾는다. 비행기는 더 빠를 필요가 없어졌다. 시간에 대한 감각은 이미 비행기 이전, 공항이나 대기, 환승 등에서 소비된다. 결과적으로 속도의 혁신은 오히려 인류, 사회, 삶의 경계에서 머뭇거린다.
이 책은 기술 결정론 너머를 탐색한다. 기술 발전이 언제나 인간의 삶을 ‘개척’할 것이라는 낡은 신화를 해체한다. 비행기 속도의 ‘정체’는 한계가 아니라, 인간 욕망과 현실 타협의 총합임을 보여준다. 산업, 경제, 사회, 문화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 저자는 오히려 ‘일상에서의 느림’ ‘생산성의 유휴구간’을 예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디에서, 어떻게, 왜 속도가 더뎌지거나 멈췄는지, 그것이 만든 삶의 결을 냉철하게 바라본다.
감각과 논리를 오가는 저자의 문체는 영화평론가의 장점을 그대로 빌려온 듯하다. 감독이 하나의 스타일을 반복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듯, 저자 역시 반복되는 질문을 통해 성찰의 깊이를 쌓는다. 기계의 경계, 인간의 욕망, 안전과 효율. 책은 ‘멈춤이 필요한 잠깐’을 우리 모두에게 권한다. 속도가 미덕인 시대, 이 미덕의 경계에서 ‘멈추다’의 의미를 되묻는 기계비평가의 시선이 올여름엔 참 적절하다. 이제 우리 각자 삶의 ‘900km/h’는 무엇일까, 책을 덮는 순간 그 질문이 잔상처럼 남는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