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정보’ 포항·속초 물회 맛집, 여름 바다의 기억을 담다
짙어진 초여름 바람이 고도에 따라 엷고 짧게 유영하는 계절. 푸르른 동해와 그 해안을 따라 펼쳐진 두 도시, 포항과 속초는 여름이 특히 뚜렷하다. ‘생생정보’에서 좇은 그 맛집들의 물회 한 그릇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넘어, 포항의 솔숲 바람과 속초 항구의 파도 냄새, 바닷물이 손끝에 머무는 순간까지 잇는 작디작은 축제다. 차가운 육수에 머리를 담근 생선살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유리 접시, 습기까지 걷어내 듯 시원한 면발과 아삭한 채소, 거기 얹힌 깨소금 한 줌의 장난기까지. 여름의 맛이 무엇인지 묻는 이에게 나는 물회를 권한다.
포항의 물회 맛집에 들어서면 문을 열자마자 바닷냄새가 풍긴다. 하얗고 단단한 살결을 가진 과메기 업장의 선어들도 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광어와 우럭, 그리고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던 갯가 생선들이다. 포항 물회에는 얼음이 깨져 들어가며 투명한 육수가 퍼진다. 새콤한 식초와 들깨, 몇 방울의 참기름이 흩어지고, 한 조각의 과일(사과 또는 배)이 어울려 붙잡는 감칠맛. 그릇에는 여름 바다의 온기가, 숟가락에는 아련한 해변 기억이 스며든다.
속초의 물회집은 어부의 지친 표정이 닮아 있다. 작은 수조에서 갓 건진 가자미와 오징어 조각, 녹진한 미역과 오이채, 달콤 새콤한 다진 양념장. 육수에는 동치미 냄새가 묻어난다. 속초 물회 국물은 포항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방향제 대신 해풍에서 배어든 신선함, 이른 아침 바다에서 건져 올린 손맛이 풀어진다. 얼음 위로 동동 띄운 홍고추, 천천히 녹아가는 살얼음 육수가 사리는 여름의 시작과 끝 어딘가를 닮았다. 주인장이 건넨 한 그릇물회에 집어진 젓가락은 나도 모르게 서두른다. 허겁지겁 한입 넣으면, 그 순간 목을 타고 들어오는 차가운 감촉에 더위는 잠시 밀려난다.
이번 방송에서 소개된 두 도시의 대표 맛집들은 모두 특유의 지역성을 품고 있다. 포항 물회는 주로 뽀얀 사골국물이 아닌, 맑고 차진 멸치 혹은 다시마 우린 육수를 쓴다. 속초는 동치미 국물의 맑고 달착지근함을 살린다. 이를테면, 포항의 물회는 바다에서 오는 익숙한 깊이를, 속초의 물회는 항구의 바람 아래에서 탄생하는 신선함을 잡는다. 식사로, 해장을 위해, 혹은 긴 여정의 끝에 남은 입맛을 깨우는 용도로 이 식당들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두 도시의 물회 맛이 다르다고 말한다.
물회 식사의 본질은 차가움과 살아있는 식감이다. 붉은 고추와 파와 양파가 어우러진 조각 생선을 한입 먹고, 얇게 썬 오이나 배추의 아삭함에 이끌려 육수를 들이키면, 바다에서 일렁이던 파도가 혀끝에 부딪친다. 남녀노소 여름철이면 꼭 한 그릇은 먹고 넘어간다는 사람들도 많다. 텁텁한 입 안을 덮어내는 얼음 육수, 슬쩍 감도는 매운맛, 그리고 마지막에 갈은 깨와 참기름이 씌우는 고소함. 그 속엔 도시와 바다가 중첩되는, 누군가의 유년이자 가족의 추억이 남는다.
물회의 계절감은 오롯이 재료에 달려 있다. 기자로서 직접 포항 바닷가와 속초 항구를 방문해본 경험, 현지 주민의 소박한 추천, 그리고 여행자들이 다시금 발길을 옮기는 이유. 식탁 위에서 잊혀질 듯 소박한 생선 한 토막, 바로 오늘 새벽에 잡은 가자미 한 줄, 곁가지 깻잎과 사과 채에 담긴 선명한 바다 공기. 그 조합이 물회 맛의 절정이고 여름 풍경 그 자체다.
이제 막 포항을 떠나 속초로 향한 버스, 창 밖에 흐르는 여름 바다와 논을 스치는 바람 소리, 휴게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또 다른 식당. 여름이 되면, 많은 이들은 물회 한 그릇으로 동해의 계절을 기억한다. 한입의 시원함, 그 한 그릇에 담긴 서민적이고 동시에 시적인 기억이 한 도시를, 한 계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 그러나 그 정수를 진하게 담을 줄 아는 곳이 진짜 ‘맛집’이 아닐까. 연중무휴 늘 문을 열어두는 물회집의 풍경은 어떻게 보면 이 땅의 여름을 대표하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여름 동해를 기억하려면, 그 바다의 물회를 꼭 한 번 맛보라고 권한다. 물회 그릇에 담긴 바다의 빛, 소박함, 그리고 오래 남는 여운까지 모두를 놓치지 않았던 오늘의 식탁 풍경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