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샌들’의 역습, 그 레트로가 힙이 됐다

‘양말+샌들’ 조합, 한때는 ‘패션 테러’의 대명사로 불렸다. 집 앞 편의점 스팟룩 혹은 대학생 MT룩 정도로 소비되던 스타일이 어느 순간 뉴웨이브 트렌드의 선두로 나섰다. 스트리트 씬과 하이엔드 패션 모두 이 독특한 믹스를 주목하고 있다는 점, 패션 열차는 절대 뒷걸음질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양말+샌들’이 갑자기 주목받는 배경엔 여러 층위가 있다. 팬데믹 이후 일상복의 편안함이 중요해진 건 물론이고, 레트로·Y2K·놈코어 코드가 오버랩되면서 ‘무심함’이 곧 스타일로 재해석됐다. 해외 패션위크 스트리트 사진엔 이미 늘 그랬단 듯 당당하게 신은 컬러풀 삭스와 굵은 스트랩 샌들의 조합이 등장한다. 이번 시즌 구찌, 프라다, JW 앤더슨 등 럭셔리 브랜드들도 러버 샌들, 플랫폼 슬라이드에 슬로건 삭스를 매치한 룩을 내놓으며 공식 인증 도장까지 쾅 찍은 셈.

국내 시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포착된다. 2026년 SS시즌엔 신사동 가로수길부터 홍대까지, 남녀노소 불문 ‘양말+샌들’ 커플과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젠Z 소비자들과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선 그날의 TPO(시간·장소·상황)에 맞는 컬러 삭스, 메탈릭 샌들, 하이퍼 굵은 스트랩까지, 뭐든 믹스 & 매치 철학을 제대로 활용한다. 심지어 양말의 소재감이나 프린트까지 서로 비교하며 인싸력 경쟁 중.

일부 패션 꼰대(?)들에겐 여전히 낯설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패션은 기존 규범과 고정관념을 뒤엎는 데 주목한다. 한때 ‘어글리 슈즈’가, 또 언밸런스·오버핏이 비주류에서 주류로 진입한 전례를 생각하면 지금의 ‘양말+샌들’도 오래 남을 트렌드임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브랜드별 MD와 리테일러들의 분석이다. 일명 ‘양샌족(양말+샌들족)’이 늘면서 유니클로, 자라,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는 얇은 아이스 삭스, 스포티 프린트 양말, 플리폼 샌들 신상 라인업에 앞다퉈 투자 중이다. 온라인 패션커뮤니티, 쇼핑앱 리뷰 게시판엔 ‘기능성+색감’에 대한 후기와 질문이 넘쳐난다. 최신 MZ 설문 결과에 따르면 “양말로 포인트 주기”가 절대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 중이라는 것. 스타일의 중심이 더 이상 구두, 하이힐이 아니라는 증거다.

연예계·스타마케팅의 영향도 적지 않다. 르세라핌, 뉴진스, BTS 멤버들마저 양말+샌들 룩을 사복이나 공항패션, 팬미팅에서 소화했다. 이젠 스타일링의 실패가 아닌, ‘취향 드러내는 디테일’로 읽히는 분위기다. 셀럽이 한 번만 신어도 따라하는 따라쟁이 문화가 아니라, 누군가 저 조합을 당당하게 즐기는 것 자체가 당위성을 부여한다. 대중도 더 이상 ‘룩’을 우스꽝스럽게 소비하지 않는다. ‘내 맘대로=쿨함’이 정착된 사회란 말.

한편, 실용성과 지속가능성 이슈도 언급할 만하다. 합리적이면서도 계절성과 실용성을 챙긴 ‘양말+샌들 룩’은 발 냄새 예방, 자외선 방지, 불편한 구두 대신 여름철 쾌적함 등 장점이 많다. 날씨가 애매할 땐 양말 한 겹이 체온 유지에 적절한 조치가 되고, 러닝용 퍼포먼스 샌들과 테크웨어 삭스를 결합하면 ‘스포티즘’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값 비싼 부츠, 천연가죽 신발 하나 없이도 자기만의 무드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패션의 민주화 선언이기도 하다.

물론 다뤄야 할 이면도 있다. ‘양말+샌들’이 아직도 ‘심미성’을 포기한 타협, 혹은 남의 시선에 신경 끄는 용기(?)로 간주되기도 하고, 일부에선 출근 복장으론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다. 여기에 패션 인플루언서와 브랜드 협업 광고가 난립하면서, ‘개성’이란 명분 아래 또 다른 획일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패션의 본질은 ‘과감하게 시도해보기’에 있다. 양말+샌들의 대관식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꾸밈과 무심함이 공존하는 2020년대 중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한다.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을 드러내는 소박한 즐거움, 그리고 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걸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자세 아닐까.

오늘도 누군가는 ‘이게 뭐지?’ 하면서 도전해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조합이 진짜 힙하다’며 인증샷을 남긴다. 마침내, 패션은 남의 시선을 쫓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이렇게 증명한다. 신선한 스타일링의 새로운 재미, 다음 주엔 또 어떤 믹스가 시선을 잡아끌지 궁금해진다.

— 오라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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