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박은선 변호사, ‘학교폭력입니까?’ 출간 – 벼랑 끝에서 퍼 올린 질문

여름이 무거운 공기를 품고 흐르고 있다. 교실엔 푸른 칠판 대신 스마트보드가 놓였고, 아이들 표정엔 미묘한 그림자가 스며 있다. 이쯤의 계절에 우리는 종종 잊혀진 상처를 돌아본다. 최근 출간된 박은선 변호사의 《학교폭력입니까?》는 그런 잊힘을 거부하는 여자다. 한 권의 책, 그 안에는 단순한 법의 문장들이 아닌, 누군가의 아득한 울음과 분노,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의 무게가 가득하다. 매년 학폭 문제가 터지고, 뉴스 헤드라인은 한순간 달궈졌다 식지만, 정작 그 안의 인간다움은 얼마나 탐구됐던가. 박은선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서, 학교 폭력의 정의와 그 너머의 경계를 묻는다.

‘괴롭힘인가, 장난인가.’ 쉬운 듯 명료한 질문이지만, 박 변호사는 그 양 갈림길이 실은 얼마나 복잡한 덫인지, 이야기 속 사례로 천천히 보여준다. 보고서에 적힌 ‘학폭’의 칸 하나가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복합적인 감정선의 조각들 위에 쓰여지는지, 책 곳곳에서 전해진다. 비명을 질러도 닫혀진 교실, 조용한 복도 끝 물기 어린 눈동자, 그리고 그 끝없는 무기력. 삶을 버티는 아이들의 노력이 종종 ‘잘잘못’의 문제로만 환원되는 구조에, 저자는 ‘정말 이게 학교 폭력입니까?’라고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법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법조인의 언어를 빌리되, 그 안에 배어 있는 서사와 감정을 뚜렷이 새긴다.

2020년대 중반 이후, 학교폭력은 단지 학생간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공론장이 되었다. 매체와 SNS를 타고 확산되는 학폭 미투, 피해 학생과 가족의 절규, 그리고 뒷북 대책에 지친 사회. 그러나 여전히 사건은 반복된다. 숫자 너머에 앉은, 우리 아이의 자화상. 박은선의 책이 뿌린 질문은 과연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책은 진실을 선명히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이란 수면 아래 잠긴 감정이라는, 그 진실의 불확실성마저 껴안는다. 잊혀진 기억, 모호한 책임, 사라진 사과… 아이들은 왜 고백하지 못하는지, 어른들은 왜 경계에서만 맴도는지, ‘학교폭력입니까?’는 법의 언어와 마음의 언어가 부딪히는 자리에서 답 대신 새 물음을 던진다.

다른 최근 서적들—예컨대 피해사실을 일방적 통로로 증언하는 자전적 에세이, 혹은 교사 입장에서 본 학내 문화 해설서 등—과 달리, 이 책은 탁월할 만큼 중간자 시선을 유지한다. 가해와 피해를 단순히 곱씹는 것이 아니라, 둘의 경계에 선 ‘공기’와 ‘침묵’까지 영상미처럼 묘사한다. 그 방식은 냉철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 위에, 정작 잊혀진 ‘질문’을 재배치한다. 폭력이 폭력이라고 불리기 전, 벌써 누군가는 고요하게 무너져 있다는 사실. 박은선 변호사는 말한다. “두려움은 설명되지 않고, 슬픔은 때로 목소리가 없다.” 그리고 그 침묵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꼼꼼하게 짚어낸다.

실제 책에는 구체적 판례와 상담의 현장이 펼쳐진다. 어느 한 학생의 익명 실명 상담, 법정에서 뒤늦게 돌아보는 아이의 뒷모습, 그리고 남겨진 가족의 서러운 기록. 저자는 이 에피소드들에 공적 책임과 사적 슬픔을 동시에 새긴다. 사건마다 서로 다른 얼굴, 다른 눈빛, 다른 침묵이 내장돼 있다. 읽는 이에게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학폭’이란 단어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에서 만들어졌는지, 거듭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이 책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남긴다. 무언가를 당장 바꿔야 하는 의무감보다, “나도 몰랐던 사이, 내가 놓쳤던 건 없었나”라는 침묵의 성찰을 더 오래 남긴다.

우린 가끔 지나간 아픔을 별처럼 떠올린다. 누군가의 사소한 농담이 내겐 날카로운 빗방울이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박은선의 글은 거기까지 간다. 수많은 학폭 판결문, 교내 사안 조사서의 언어적 거칠음 너머, 조용한 눈빛 하나를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묻는다. 진정한 회복이란, 법과 사과의 합의가 아니라 서로의 고통에 ‘머물러 주는’ 것 아니냐고. 최근 나오는 한국 학교폭력 르포, 다큐멘터리, 소설—모두 피해와 가해의 선긋기에 몰두하지만, 이 책은 감정의 경계에 오래 머문다. 꿈쩍도 않는 시간의 틈에서, 작은 용기 하나를 기다리듯 천천히 기록한다.

지금 2026년, 우리는 한때의 유행어처럼 소비됐던 ‘학폭’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학교폭력입니까?’라는 물음표는 결론이 아닌, 새로운 대화의 시작에 더 가깝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교육현장 안팎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겪는 이들의 고단함. 그 사이에서 이 책은 차가운 현실을 서정적으로 꿰뚫고, 우리 모두에게 조용한 숙제를 남긴다. 무거운 질문 하나. 학교폭력은 여전히, 그 누구의 문제인가.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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