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예 플러스] 연상호 ‘실낙원’, 토론토영화제 초청
한여름 서울 강남의 번잡한 골목, 신작 포스터 옆에 연상호 감독의 얼굴이 붙은 현수막이 다가온다. “실낙원, 토론토영화제 공식 초청작.” 검푸른 포스터 속 불타는 무채색 풍경, 서울역의 그 강렬함을 떠올린 이들, 넷플릭스 ‘지옥’의 어두운 군상에 반응했던 관객이라면 이번 소식이 남다르다. 7월 22일 저녁, 디지털 콘텐츠팀으로 걸려온 질문들. 토론토영화제, 올해 최고 화제작 리스트에 ‘실낙원’ 이름을 새긴다. 아침부터 네이버, 다음 주요 연예면엔 실시간 검색어가 올라있다. 현관 밖은 비가 내리지만, 영상미와 묵직한 메시지로 한국을 대표해 온 연상호 시네마는 또 하나의 고지를 밟았다.
이른 오전, 기자는 영화 촬영 현장을 다시 찾아가 본다. 영화진흥위원회에도 확인한다. 토론토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Paradise Lost(실낙원)’가 세 번째 줄에 박혀 있다. 이번 초청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연상호 감독과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 그는 단순히 “기쁘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례적으로 많은 해외 투자자와 큐레이터로부터 사전 질문을 받았다”며 “전작보다 날카롭게, 한국사회의 심연을 담으려 했다”는 소감. 감독의 전작 ‘부산행’, ‘지옥’, ‘염력’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 본성, 사회 구조의 이면을 짚어왔으나 이번엔 한층 더 어둡다. 실제로, ‘실낙원’은 기독교적 상상력과 오컬트 장르의 절묘한 교차에 기초한다. 영상 취재의 눈으로 본 세트장, 담벼락마다 새겨진 설화 모티프, 비 내리는 교회 마을의 함정과도 같은 이미지를 집요하게 기록한 필름컷. 이번에도 연 감독 특유의 로우앵글, 좁은 공간 안 속도감 있는 추적 촬영이 곳곳에 도배됐다.
국내 영화계는 이번 토론토 초청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부산행’ 올라운드 흥행 뒤, ‘지옥’ 넷플릭스 글로벌 히트, 그리고 한국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매번 시험장에 세우는 연상호. 곧이어, 코로나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영화제 풍향이 관객 장르 지향성에 무게를 실으며 연상호를 더부각시킨다. 2026년 토론토는 ‘기획-감독-프로덕션’ 삼위일체의 리더를 더 노골적으로 환영한다. 아이맥스 촬영, 리얼타임 디지털 합성 등 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동반한 작품이 많았지만, ‘실낙원’만큼 진한 드라마와 사회문제, 장르적 과감함을 동시에 좇았던 사례는 드물었다는 게 업계 평이다. 연출 현장에 있던 스태프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늘 바쁘게, 쫓기듯 움직이는 연상호의 촬영 본능이 이번엔 더 세밀했고, 세트-상상-디지털 이질감 없이 착 붙는 순간들이 많았다.” 현장 카메라에 잡힌 롱테이크, 배우들의 표정 동작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외부 촬영팀이 실수로 지나쳤던 생활 소품, 바닥, 조명 반사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연출력에 또 한 번 감탄이 터져나온다.
‘실낙원’은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만으로도 장르 혼합의 끝을 보여준다. 종교와 사회, 초현실과 현실의 기묘한 뒤섞임, 여기에 사회적 불안과 개인의 내면적 고통, 도시 변두리의 폐허적 감수성까지. 영화는 신흥종교 집단, 몰락한 근대 교회, 그리고 21세기적 군중심리를 한 공간에 겹쳐낸다. 소설 대신 영상으로 그려지는 현대적 ‘실낙원’의 풍광, 곳곳에 배치된 인물들은 한밤의 군상으로 등장했다가, 새벽 어스름에 내몰리듯 사라진다. 액션보다 장면, 스릴보다 시각적 심상, 이 모든 것을 현장 카메라가 뒤따라간다. 실제로, 미술감독과 현장 조명팀의 의도 역시 “90% 아날로그 질감, 10% CG합성으로 그림과 현실의 균열을 교차했다”고 설명한다. 국내 기존 장르물과 달리, 토론토가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동시대 사회문제를 오락과 메시지 그 경계에 둔 ‘이도저도 아닌’ Cinema가 있다는 업계 해설도 맞닿는다.
이번 초청으로 연상호 감독은 다시 한번 글로벌 감독 계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오징어게임’ 황동혁, ‘기생충’ 봉준호에 이어, 2020년대 글로벌 시청자들이 한국 영화/드라마의 새로운 어둠과 결핍의 미학에 끌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토론토영화제 내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와의 짧은 인터뷰도 추가 확보했다. “연상호의 시네마는 장르적 실험과 사회적 시선을 가장 위태롭게 교차시키는 사례다. 올해 화제작 중 가장 많은 뒤따라오는 해석이 기대된다.”
한국영화가 또 한 번 그 존재감을 세계에 각인한 밤. 광장 끄트머리 어둑한 풍경, 영화가 던진 세상 한복판의 ‘실낙원’을 앞으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카메라는 다시 무대 뒤, 부산행 이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은 창작자의 ‘운동’을 따라간다. 폭우 내리는 촬영 현장, 배우와 스탭, 감독의 움직임이 빗줄기와 함께 얽히며, 한국영화의 변방에서 세계 중심을 꿈꾸는 그 날 것의 에너지가 남는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