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영국 여행자, ‘너무 싸다’…가을 일본은 북적임이 일상이 되었다
도쿄의 지하철 역 출구를 나서며 맞이하는 가을 저녁 공기에는 여행의 들뜬 설렘과 분주함이 스며있다. 이제 일본 여행지에서 ‘여유’를 떠올리는 건 또 다른 계절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 하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 그중에서도 영국의 2030세대들이 불과 1년 만에 25%나 급증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환율 효과로 인한 ‘저렴함’, 그리고 코로나19로 잃었던 자유가 다시 허락되는 시대의 감각적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너무 싸잖아’라는 한마디가 요즘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본 여행을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솔직한 말이 됐다. 특히 런던 청년들 사이에서는 몬자야키 골목의 식당 테이블을 차지하거나, 저녁이면 신주쿠 가부키초의 화려한 불빛 아래 모여드는 것이 흔한 풍경이다. 몇 년 전과 달리 일본 거리에는 말쑥한 영국 여행객 무리가 줄을 지어 사진을 찍고, ‘가성비 좋은 핸드메이드 라멘’ 한 그릇에 기뻐한다. 일본 엔화의 약세에 유로·파운드화의 상대적 강세, 그리고 팬데믹 이후 쌓여온 ‘해외로 떠나고 싶다’는 누적된 욕망이 순식간에 시장 풍경을 바꿔놓았다.
일본 관광청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여름 기준으로 일본을 찾는 영국인 20~30대 여행객 수는 전년 대비 25%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승세는 단순한 숫자 변화만이 아니라 일본 주요 도심 곳곳과 이색적인 지방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느껴진다. 일례로 오사카의 돈키호테 매장에선 저녁마다 영국 젊은이들이 ‘가성비 쇼핑 리스트’를 나눠 가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살아있는 듯한 도톤보리의 밤거리, 굿즈숍 앞에 줄 선 외국인의 목소리는 영어, 그리고 파운드화의 환산법을 계산하는 낮은 속삭임들이다.
이 현상을 단순히 ‘싸서 올라왔다’로 해석하기엔, 여행이란 행위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변화가 느껴진다. 각자의 일상에서 벗어나 타국의 소리를 듣고, 낯선 맛을 탐험하려는 젊은 세대의 모험심이 ‘실용’과 맞닿는 시점, 그 경계에서 일본이라는 공간은 독보적인 끌림을 만든다. SNS 속 플라워카페, 오모테산도의 예술 서점, 오키나와 해변에 이르기까지 여행은 ‘당장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오늘’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급격한 환율 변화에 해외 여행이 몰렸고, 특가 항공권과 여행 플랫폼의 실시간 정보 공유가 대세를 이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북적임’은 보다 반복적이고 장기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도쿄 시부야의 골목마다 들려오는 각국 언어의 어울림, 미식 골목에서 번지는 새벽 감자튀김 냄새, 거리 디저트 가게에 읊조려지는 ‘이 가격 실화냐’라는 영어식 감탄. 이 모두는 여행이 단순한 이동을 넘어 가치를 찾아가는 개인적 탐험임을 보여준다.
여행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에도 일본행 예약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영국 청년들 간 ‘저렴한 일본 여행’ 공유가 전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는 “한국 라면보다 더 저렴하게 맛본 일본 우동”, “도쿄 호스텔이 런던 자취방보다 싼 기적” 같은 후기가 쏟아지고 있다. 항공권부터 숙박, 한 끼 식사까지 ‘가성비’를 따져가며 체험 중심 여행을 추구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도 이 바글거림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여행객 급증으로 현지 식당 예약이 어렵다”, “시골 마을까지 몰려드는 관광객에 주민 불만 높아진다”는 목소리도 많다. 일본 지방 소도시에서는 올여름 관광객을 제한하기 위한 방안들이 시범 도입 중이기도 하다. 여행 경제의 활성화 이면에 지역 원주민과의 갈등, 오버투어리즘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와서 부딪히고 느끼는 오늘’이 여행의 가치를 다시 쓰고 있다.
거리에는 색과 냄새, 소리가 가득하다. 한여름의 습기가 빠진 일본 9월, 어느 골목 라멘집 앞에서 “너무 싸서 몇 끼를 더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낯선 젊은이들 표정이 인상 깊다. 변화는 늘 소리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온다. 이번 일본의 가을에는 파운드와 엔, 그리고 ‘한 번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맞물려 도시와 시골을 가로지르는 젊은 무리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지금 도쿄의 밤은 평소보다 조금 더 북적이고, 거리의 남루한 간판마저 활력을 담는다. 일본을 찾는 영국 2030의 넥스트 무브는, 어쩌면 오늘 이 도시 어디에선가 또 다른 여행의 이유로 이어질 것이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