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침체, 베트남은 광풍…역동하는 동남아 흥행 곡선과 CGV·롯데의 도전

거대한 유리문이 ‘스르륵’ 열릴 때마다 베트남 하노이 시내의 한 대형 복합상영관은 젊은 관객들로 북적인다. 팝콘 냄새가 진동하고 로비 곳곳엔 현지 관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인증샷에 바쁘다. 스크린에는 한국 영화가 아닌 베트남작이 포스터를 장식한다. 2026년, 한국 극장은 팝콘마저 식을 정도로 한산하다. 코로나19 시절 극장의 불이 꺼지는 듯하더니, 팬데믹 이후에도 수요는 회복되지 않는다. 한국 박스오피스 전체 매출이 반토막났다는 한숨이 터진다. 그런데,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진 곳. CGV는 베트남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찍었고 롯데도 현지 시장에 박차를 가한다. 베트남 박스오피스, 역대 최대의 기록.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카메라 시선을 타고 극장가 이면을 들여다본다. 한국에서는 대형 멀티플렉스가 손님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동남아 극장가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다. 팬데믹 이후 한국인들이 OTT를 안방에서 즐기며 극장가는 ‘고령화’와 ‘습관 붕괴’에 직면한다. 적은 신작 수, 줄어든 관람 객. 블록버스터조차 예전 같지 않다. 반대로 베트남은 신흥 소비층이 빠르게 늘고, 영화관은 젊은이들의 데이트와 가족 여가를 모두 책임지는 핫플레이스로 진격한다. 좋든 싫든, 극장은 패션이 되고, 인증샷은 SNS에 넘친다.

2025년 하반기 기준 베트남 극장 매출은 역대 최고치. CGV는 이미 체인 수 기준 동남아 최대. 신작 베트남 영화들은 개봉과 동시에 로컬 대화제를 맞는다. 젊은 관객들은 외국어 역습 없는 자국 영화에 열광한다. 영화관 풍경을 빠르게 포착해본다. 베트남 대도시 극장은 금요일 밤마다 티켓 매진 행렬, 팝콘 줄마저 길게 늘어진다. 소재와 장르도 각양각색, 로컬 콘텐츠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한국은 “이게 다 OTT 탓”이라고 푸념하지만, 그만큼 현지 극장 경험은 즐거움 그 자체다.

극장 산업의 판도는 거꾸로 흐른다. 분석가들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처럼 도시화와 소득이 급상승하는 신흥국을 극장업계의 미래로 본다. 롯데시네마는 한국 내 점포 구조조정 대신 적극적으로 동남아 진출을 확대한다. 오프라인 콘텐츠 소비가 포화된 한국, 일본과 달리 동남아는 아직 극장 문화의 성장 여지가 크다. 현지용 마케팅과 다양한 로컬 영화, 할리우드 수입작 콜라보까지 다채롭다. 영화관 비즈니스는 더이상 통계와 페이퍼플랜으로 설명할 수 없다. 관객의 눈, 극장 내 실제 풍경, 들려오는 목소리—이 현장성이 흐름을 좌우한다.

한국 극장은 환기된다. 오래된 관습 속 침체, 실감나는 스크린 경험에 대한 ‘잊혀진 욕망’, 변하지 않는 콘텐츠 공급 구조. 베트남의 현장은 그 반대다. 트렌드에 민감한 Z세대와 도시 중산층이 “극장은 친구와 연인, 가족의 놀이터”라고 답한다. 티켓 가격은 여전히 한국보다 저렴하나, 브랜드 경험은 고도화된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은 지역색과 이벤트로 청년을 쏠리게 한다. 짧은 틱톡 영화 홍보, 로컬 코미디와 멜로, 현지 언어 자막까지 성수기 흥행곡선을 만든다. CGV 베트남의 ‘대박’은 우연이 아니다.

한편, 한국 영화계는 유입 경로는 다양해졌지만 분산 속에서 중심이 무너졌다. 뻔한 시퀄, IP 영화, 반복되는 캐스팅. 풍성한 온라인 콘텐츠와 비교하면 극장 경험은 점점 더 특별하지 않다. IT/Tech 전문기자로서 바라볼 때 이면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자리잡는다. 베트남에선 모바일 결제와 예매 시스템, 실시간 평가, SNS에서 ‘핫하다’ 소문까지 자생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오프라인 관객 유치와 디지털 트래픽이 선순환한다.

실제로 현장 영상 취재를 나가면 한국 극장 로비와는 피부로 차이가 느껴진다. 군데군데 빈상영관 포스터 위엔 “관객이 돌아오길 기다립니다” 팻말, 베트남 현장 로비엔 ‘설렘’이 가득하다. 롯데·CGV의 동남아 진출은 단순 해외확장이 아니라, 영화 산업의 중심축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신호다. 한국에선 OTT에 대응하는 ‘공존’ 모색, 베트남 등지선 영화관 그 자체가 신흥 엔터 공간이 된다. 무심코 지나친 관객의 표정마저, 미래의 흐름을 바꾼다.

2026년, 글로벌 멀티플렉스가 정답을 바꾸고 있다. “영화는 스크린에서만 본다”는 전통은 다시 동남아에서 열정적으로 재생산된다. 마치 과거의 한국 극장가를 보는 듯도 하다. 롯데와 CGV가 바라보는 미래, 그 결은 아주 단순하다. 진짜 열정과 수요가 살아있는 현장으로 움직이는 것. ‘반토막’에 머문 한국과 ‘최대치’에 도달한 베트남, 이 흥행속의 카메라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