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 여행이 노래가 되던 날, 일본 첫 솔로앨범 ‘旅’가 가진 시간의 의미

기차는 한밤을 달려 시골 역에 멈춘다. 엑소 찬열의 목소리는 그런 기차의 심장소리 같다. 오래 전 누군가가 끝까지 나를 믿어줄지 의구심 가득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 그 초입에 세상이 조용히 응원해주듯 울려 퍼지는 피아노와 느릿한 드럼, 그리고 저마다 문득 저문 가로등 불빛처럼 번지는 감정, 이 모두가 찬열의 첫 일본 솔로앨범이 내 안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순간을 닮아 있다.

10월 2일, ‘旅(여행, 타비)’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이번 앨범은 단순히 K팝 아이돌의 국외 진출이라는 경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발음부터 의미까지, ‘旅’라는 한 글자가 삶의 다양한 방향과 정체성, 그리고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지 찬열은 음으로, 가사로, 그리고 빈틈으로 대답한다. 데뷔 14년차.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한 ‘도전’이란 이름이, 그의 음악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여행의 시작점으로 움튼다.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여행’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꿈, 그리고 잊힌 기억들을 돌아보는 방향키였다. 단지 무대 위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닌, 불 꺼진 방안에 홀로 있을 때 떠오르는 두려움, 한낮의 열기 속에 쓸쓸함을 담아내는 그의 감성은, 일본 팬들에게 익히 알려진 밝음 너머 묵직한 무게로 다가간다.

타이틀곡 ‘Wander in Me’는 춥고 불안하게 맞이하는 새벽이 있다면, 그 역시 누군가를 떠올리며 얼어붙은 감정을 짧은 숨결로 데운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앨범의 사운드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몽환적이지만, 중간중간 첨예하게 다듬어진 기타 사운드,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피아노 라인, 그리고 절제된 보컬이 마음을 덜컥 열어젖힌다. 더듬거리듯 소리내는 일본어 가사는 기계적이지 않고 불안한 여행자의 설레임과 초조함을 동시에 안는다. ‘旅’의 수록곡들은 흔한 발라드, 흔한 팝의 구도를 따르지 않고, ‘감정선’을 소리의 곡선으로 잡아낸 듯 섬세하다. 찬열이 직접 쓴 곡은 물론, 일본의 신예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트랙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자기 고백을 일궈낸 시도가 빛난다.

배경을 넓혀 보면, K팝 아이돌이 일본에서 낸 솔로 앨범은 더 이상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이름 사이에서도 찬열의 ‘旅’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하나다. 일본 진출의 상징적 대명사가 아니라, 한 아티스트의 멈출 줄 모르는 방황, 그리고 자기 발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이미 SNS와 오프라인 팬미팅에서 음반에 담긴 자작곡의 가사 한 줄 한 줄을 자신의 여행과 겹쳐 읽으며 위로를 얻는다. 유튜브와 트위터, 팬카페 등지에는 발매 당일 ‘#찬열_Tabi’ 해시태그와 함께 감상평이 쏟아지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일 양국의 트랜디 음악 시장에선 BTS, 세븐틴 등 거대 그룹 멤버들의 솔로 론칭이 연이어 있어 왔지만, 찬열의 시선은 경쟁 아닌 공감, 환호보다 속삭임에 더 가깝게 머무르고 있다.

‘旅’의 포토북 콘셉트에는 낯선 기차역, 텅 빈 골목, 낡은 옥상, 계획 없는 산책이라는 이미지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이는 대중음악에서 흔히 찾기 힘든 ‘무계획의 용기’ ‘일상에 깃든 희망’을 보여준다. 앨범 재킷에 흐릿하게 번지는 붉은 노을, 그리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닮은 찬열의 실루엣이 주는 감성은 팬들뿐만 아니라 익명의 청춘들도 무심코 한 번쯤 고개를 들어 볼 작은 평화를, 멀어진 꿈의 단서를 건넨다. 음악 산업의 트렌드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이번 앨범의 스타일과 메시지에 대해, “포화상태 K팝 산업에서 개인 서사의 가능성, 불확정성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평을 내놓는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부족함마저 드러내는 솔직함이야말로, 지금 이 세대의 ‘진짜 여행’일지 모른다.

음악은 가끔 ‘아픈 곳’을 위로하고, 또 누군가의 외로움을 증명해준다. 엑소 팬이 아닌 이들조차 찬열의 노래를 들으며 지난 계절을 떠올리거나, 조금은 감정에 솔직해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고 토로한다. 음반 발표 후 일본 내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에 바로 진입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쇼와, J-팝, 레트로 열풍이 교차하는 2026년의 일본에서, 90년대 키드 팬들이 다시금 어린 날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일까. ‘旅’의 노래들은 요란하지 않은 동질감으로 작은 위안이 되어준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고백과 같은 앨범이 시대를 초월한 ‘공감의 언어’가 된 것을 높이 평가한다. 데뷔 이후 수차례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달라진 아이돌의 위상 속에서 찬열이 보여 준 이 작은 ‘여행’은, 무대를 내려온 순간에도 꾸준히 ‘자기다움’을 새기려는 움직임 그 자체로 남는다. 결국, 음악이란 지금 이곳을 잠시 잊고 어딘가로 흘러가길 바라는 모두의 작은 여백이자, 불완전한 우리 모두의 “여행”이 아닐까. 오늘 이 음반 한 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일상마저 여행지로 바꿔버리는 감각적인 마법이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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