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과 티빙이 벌이는 농구 예능의 새로운 판, ‘큽털기’의 파급력을 읽다
KBL이 티빙과 손을 잡고 이동하는 방향, 이제 농구판은 이야기로도 승부 본다. 10개 구단 전원을 비시즌 내내 조명하는 파격 스포츠 예능 ‘큽털기’가 베일을 벗었다. 이 기획, 기존 농구팬 층은 물론 메이저리그의 에피소드형 콘텐츠에 익숙한 ‘콘텐츠 소비 세대’까지 농구의 영역으로 끌고 오려는 전략이 명확하게 읽힌다. ‘화끈한 경기만이 농구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 KBL은 프로스포츠가 처한 인구절벽, 평균연령 이슈, 전체적 침체의 순간에서 팀과 선수, 그리고 팬의 연결고리 자체를 재정비하는 타이밍을 택했다.
‘큽털기’는 팀 훈련장, 구단 사무실, 선수단의 일상까지 타임라인으로 풀어낸다. 주요 메타는 ‘경쟁과 협력’, ‘선수 성장’, ‘락커룸 케미’ 등으로, 팬들은 더 이상 단순 경기결과만을 소비하지 않는다. 트렌드는 버티컬 콘텐츠로 연결되는 ‘인물 중심 스토리텔링’이다. 농구를 많이 본 팬들은 이미 해외 시리즈로 ‘드림팀: 더 라스트 댄스’, ‘하드 노크’, 그리고 일본의 ‘슬램덩크 비하인드’ 등과 비슷한 장르에 익숙하다. KBL이 국내 메이저 OTT와 공식적으로 시너지를 내는 건 이번이 첫 시도.
흥미로운 건 KBL이 이른바 농구판 2세대 리그들의 패턴, 즉 ‘팬의 니즈’에 진지하게 응답했다는 점. 기존 중계/하이라이트 영상을 넘어 ‘챔피언결정전 뒷이야기’, ‘신인 드래프트 적응기’, ‘베터런 리더십의 실상’까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팬덤 구조도 한층 다양해진다. 선수별 SNS, 약체 팀 스토리, 10대 신인 라이프까지 입체적이다. 특히 2030 여성 팬층은 이미 스포츠 예능에 반응이 빠르다. 농구는 드라마와 함께 소비되고, OTT는 이를 구독자 유입의 킬러콘텐츠로 밀어붙인다.
예능의 판은 다르다. 유튜브식 하이라이트가 경기 자체의 스피드, 에너지, 결정적 한 순간(미친 3점슛, 클러치 블록)만 남긴다면, 농구 예능은 하나의 팀을 ‘시즌 내내’ 따라가면서 고비·트레이드·갈등·우정 같은 단어로 팬을 핵심 스토리에 붙잡아둔다. 이 흐름은 NBA, 일본 B리그, 유럽 리그까지 일종의 ‘드라마 뽑기’로 이어졌다. 실제로 KBL도 티빙의 빅데이터 기반 취향 분석을 받아, 구단별 편집 포인트와 화제성을 들고 나왔다. 각 구단만의 컬러와 트라우마, 캐릭터성까지 챙기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 KBL의 ‘큐레이션 역량’도 시험대에 오른다. 지난 시즌 FA 대이동, 신예의 돌풍, 원년 강호의 부활 같은 스토리가 현장에서는 필연적이지만, 대중에겐 ‘뉴스 그 자체’로만 소비됐다. ‘큽털기’는 숨은 연결망, 훈련 중 뒷얘기, 팬서비스 이벤트, 비시즌 내 굵직한 갈등과 해프닝까지 전방위로 잡는다. 농구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티저 영상이 ‘오늘 경기보다 재밌다’는 평이 나올 정도. 물론 관전 포인트는 ‘과도한 연출’과 ‘진짜 농구’라는 줄타기다. 해외 스포츠 예능도 ‘진정성’이 무너질 때, 팬덤 이탈이 발생했다. 실시간 반응과 공유, 캐릭터 팬덤과 신규층 유입의 데이터가 KBL 의사 결정의 키가 될 수 있다.
광고, 협찬, 스폰서십도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일반 방송과 다르게 OTT 예능은 PPL, 바이럴, 라이브 커머스 등 지원 장치가 폭넓다. 이미 타 스포츠에선 시청률 대비 오프라인 굿즈/티켓/멤버십 판매가 상승세였는데, 이번 ‘큽털기’에서도 KBL이 스폰서 맞춤형 콘텐츠 믹스전략을 시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농구 저변 확대와 팬 커뮤니티 재편, 자생적 팬콘텐츠 생산까지 이어질 전망. 2026-27시즌 신인, 용병, 슈퍼스타의 플레이와는 별개로, “농구도 이야기로 즐긴다”는 새 팬층 유입 공식이 만들어지는 장이다.
10개 구단이 모두 출연하는 이 시리즈가 국내 농구 생태계에 미칠 효과는 단순 노출 증가 그 이상이다. 농구의 풋내기부터 레전드까지, 위계질서와 신구 갈등, 하나의 클럽하우스에서 일어나는 군상드라마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시대다. 시즌 내내 팬을 묶어두는 락인(lock-in) 전략, 그리고 이제 팬의 목소리와 데이터를 분석해서 다음 시즌 기획으로 이어가는 선순환이 정착될지가 관건이다. 국내 농구판, 유튜브발 미디어 성장이 뒷심이었다면 이제 OTT 대형 예능의 파장에 응답해야 한다. 팬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원한다. 농구는, 곧 하나의 스토리다.
— 정세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