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흔들림 없는 17일의 박스오피스 1위, 그 이면의 힘

“암살자(들)”이 17일 연속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울림은 크다. 시장이 소란스럽다. 숫자는 강렬하다. 이 영화가 이룬 성취에는 작품 자체의 독특한 에너지와,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 시장에서 보기 드문 민첩함이 묻어난다.

신작 러시가 이어지던 10월의 극장가, 대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암살자(들)”이 독주를 멈추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김민재 감독의 노련한 연출이 돋보인다. 익숙한 암살 장르를 새 프레임과 감성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다. 배우 정해인과 전여빈의 호흡 역시 중요한 변수다.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암살자 캐릭터들이 교차하며 그려내는 회색빛 윤리의식과 묵직한 결핍, 이는 배우 개개인의 연기결과 내면의 깊이에서 전해진다. 정해인의 절제된 표정, 전여빈의 한계까지 밀어붙인 감정 에너지. 두 배우 모두 이 작품에서 연기 스펙트럼의 극한을 보여준다.

산업적 맥락에서도 흥미로운 흐름이 관찰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OTT 플랫폼에 시장을 내어준 한국영화계, 그럼에도 극장 스크린만이 전해줄 수 있는 서스펜스와 분위기, 스펙터클의 임계점을 다시 한 번 걷어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암살자(들)”은 30-40대 관객층뿐 아니라 20대 초반, 10대 후반의 영화 팬들까지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액션물과 구분되는 지점은, 삶의 구질구질한 현실과 죄책감마저 에스테틱으로 승화시키는 미장센과 조명, 음향이다. 총기가 연기 속을 가를 때마다 울리는 침묵—그 고요를 배우들이 찢고 들어온다.

1위를 유지하는 동안 경쟁작들에 비해 SNS 및 여러 커뮤니티에서의 언급량도 꾸준히 많았다. 대부분의 관객 반응은 두 종류로 갈렸다. 아드레날린 넘치는 액션에 환호하는 층, 그리고 인간의 추악한 본성 및 불완전함을 집요하게 파고든 심리묘사에 매료된 층이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도덕적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보는 이마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스토리 속 암살자들이 누군가를 죽이는 극적인 장면보다, 그 이후에 남는 죄의식·버려진 삶의 공기에 더 오랜 여운이 깃든다. 익숙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세밀하게 설계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디테일한 감정 표출, 영화음악의 독창적 배치 역시 강한 몰입감을 만든다.

연출자 김민재 감독의 영화적 스타일은 젊은 감독답지 않게 안정된 호흡감과 잔인하게 냉정한 시선이 공존한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관객 인정형’ 장르영화임에도 불구, 상업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들도 눈에 띈다. 장면마다 세련된 카메라 워크, 숨 막히는 롱테이크, 특유의 건조한 미쟝센. 세찰 듯 강렬한 액션 사이사이, 일상적인 대화와 공간이 뒤섞이면서 사건의 윤곽보다 그 이면에 잠재된 심리의 균열을 비춘다. 이는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의 주력 장르였던 시사 사회물, 직설적 메시지 드라마와는 결이 다르다. 장르적 쾌감과 인물 중심 드라마의 균형, 이번 작품이 관객을 끌어들인 핵심 이유다.

“17일 연속 1위”의 의미는 산업적으로도 크다. 한국영화 시장은 여전히 회복세를 걷고 있으나, 팬데믹 이후 장르실험이나 크로스오버 시도에 따른 ‘모 아니면 도’식 흥행의 양상을 보여왔다. ‘암살자(들)’의 쾌조는 과거 ‘명량’, ‘신과함께’급 신드롬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성취다. 이는 단발적 관객 몰이에 그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다양한 관객층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입소문과 여론조사 결과, ‘혼자라도 극장에 가서 꼭 볼 가치가 있는 영화’를 꼽을 때 ‘암살자(들)’이 예외 없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주말과 평일 관객수의 등락폭이 크지 않다는 건, 단순 이벤트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과의 비교도 흥미롭다. 최근 일본·대만 등지에서도 동시개봉 중인 ‘암살자(들)’은, 문화적 코드와 인간 내면의 모순이라는 보편적 테마를 활용해 국경 없는 공감을 이끌고 있다. 특히, 로컬리티와 글로벌리티를 동시에 잡아낸 각본의 핵심 장면들은 해외 비평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다. 이는 ‘범죄-액션’이라는 장르가 한국영화계 내에서 단순히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202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영화 시장에서 ‘장르의 한국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묻는 과정에서, 이번 흥행 선전은 산업 전체의 방향성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편, 경쟁작의 견제,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암살자(들)’이 선택되는 시간은, 아직까지 한국 영화 팬들이 ‘극장 어둠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동’을 그리워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흔들림 없는 흥행에는 배우 개인의 스타성, 감독의 스타일, 산업 흐름이라는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 숨어있다. 스크린과 관객, 배우와 인물,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진짜 삶’의 그림자를 길게 남기고 있는 ‘암살자(들)’. 이 기록이 일회적 현몰이 아닌, 다음 세대 한국영화의 행로로 이어질지 주목해본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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