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유럽과 일본이 건네는 크리스마스의 온기와 귓속말
겨울바람이 본격적으로 매서워지기 시작하는 10월의 끝자락,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의 계절이 다가온다. 이국의 도시에는 오랜 역사와 현대의 감성이 교차하는 거리들이 반짝임과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번 겨울, 누군가는 냉기로 가득 찬 거리에 따뜻한 오핫초콜릿 한 잔, 반짝이는 전구 아래에서 건네는 작은 선물, 그리고 향신료 내음 가득한 와인잔에 기대어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마음의 온도를 다시금 느끼고자 한다.
특집으로 소개된 올해의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지는 독일의 전통적인 겨울 축제와 음악이 흐르는 비엔나, 도쿄의 귀여운 ‘치이카와 마켓’까지 연결된다. 독일은 베를린, 뉘른베르크, 드레스덴 등 각기 다른 도시마다 저마다의 색깔로 겨울을 꾸민다. 도시 전체가 동화책 한 장면처럼 변하는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나무로 만든 작은 장난감, 손으로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장식, 구수한 스파이스 향을 머금은 글뤼바인(글루바인)이 이방인의 마음도 녹인다. 그곳을 걷다 보면 낯선 언어와 따스한 불빛이 한데 어울려, 고요하지만 들뜬 겨울의 밤을 마법처럼 연출한다. 달콤한 견과류 냄새와 구운 소시지 냄새가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음악과 예술의 도시답게 소박한 마을 광장 하나, 하나가 무대가 된다. 라트하우스플라츠 앞, 현관문을 환하게 밝히는 커다란 트리와 들려오는 합창단의 노랫소리는 누구나 처음이라도 오래된 친구처럼 느끼게 한다. 핸드메이드 촛불, 지역 장인의 세련된 장식품, 그리고 짭조름하고 고소한 쿠키(바닐라키펄)은 미각에 무료한 겨울을 선물한다. 조용한 골목길을 지나며 파도처럼 번지는 은은한 조명 아래서, 시간은 잠시 멈추어 버린 듯하다.
이번 해에 눈에 띄는 변화는 가까운 일본에서도 새로운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가 천천히 움트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등장한 캐릭터 테마의 ‘치이카와 마켓’처럼 일본만의 섬세함과 귀여움이 묻어나는 겨울 풍경은, 젊은 여행자를 유혹한다. 따뜻한 우동과 화려한 팬시 굿즈, 빛나는 포토존이 현대적인 감각과 동심을 동시에 자극하며, 체험형 이벤트까지 더해진다. 가족, 연인, 친구 누구와도 마음을 훈훈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본식 크리스마스만의 매력이 또렷하다.
최근 여러 국가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단순한 쇼핑장이 아니라, 주민들이 소통하고 문화를 나누는 플랫폼(Platz)처럼 재해석되고 있다. 한때 한파와 물가상승, 멀어진 세계라고만 느껴졌던 해외여행이었지만, 올겨울은 다시 모닥불 같은 겨울 감성과 체험을 찾아 떠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여행사는 테마별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고, 전통적 유럽만큼이나 일본·아시아권 마켓 투어가 트렌드로 각광받는다. SNS에는 각 도시 마켓의 비주얼이 빠르게 공유되고, 테이블 위 호빵·거리의 라이브 공연·특색 있는 장식품 사진들이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익숙한 도시에서 벗어나, 남몰래 꿈꾸던 전설 속 거리나 만화 속 ‘주인공’이 되는 체험을 이국에서 경험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계적인 쇼핑과 소란스러운 관광이 아니라, 사소한 수공예품 하나, 누군가와 따뜻하게 마시는 첫 잔의 와인, 밤거리 너머로 들려오는 잔잔한 캐럴에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지듯 녹아드는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희뿌연 연무와 맑게 얼어붙은 밤공기, 언제 와도 같은 듯하지만 다른 풍경. 그 안에서 마주하는 나와 이방인의 미소, 그리고 그 눈부심 속에 잠시 머무는 시간.
변화하는 취향만큼이나 오랜 전통도 새로운 해석도 모두 존중받는 겨울 여행이다. 소박한 시장과 수줍은 인사, 달콤한 과자와 켜켜이 쌓인 아기자기한 삶의 조각들. 겨울 바람은 차갑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오히려 온기가 가득하다. 떠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올해의 마지막 달력을, 낯선 곳 따뜻한 온도와 함께 새긴다면 그 자체로도 분명 뜻 깊은 기억이 될 것이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