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 학원형 연예기획사 피해… 넘어져 본 아이들의 노래

모든 꿈에는 대가가 붙는다. 수많은 아이돌과 배우, 춤과 노래로 빛난다던 별들은 대개 아주 어린 청춘으로부터 시작됐다. 연습생이라는 말이 신기루처럼 떠오르던 한때, 그 꿈의 뒤에는 무수한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이 처음으로 공개한 ‘학원형 연예기획사 피해’ 실태. 그 차가운 통계 속에는, 아직 목소리가 한창 여린 아이들과, 이들의 미래를 안개처럼 흩뜨려 놓은 기획사의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단순한 수치로 요약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 피해 상담의 절반, 정확히 53.2%가 아동·청소년이라는 사실은 그 어떤 경고보다 날카롭다. 준비된 스타도, 빛나는 성공도 전부 거기부터 비롯됐지만, 정작 계약서 한 장, 보호자 없이 서명을 강요받고, 수천만 원의 돈을 ‘투자’라는 말로 내주어야 하는 현실. 수업이 느닷없이 취소되고, 약속했던 데뷔는 구두 약속에 그친 채, 학부모와 학생을 내몰아버리는 학원형 연예기획사의 덫. 이들의 말은 지나간 뉴스의 소음이 아니라, 오늘도 SNS와 카톡에 쏟아지는 청소년의 한숨이다.

피해는 복잡하고 실감난다. 14세, 15세의 기초반 아이들에게도 ‘데뷔’와 ‘기획사 전속’ ‘트레이닝’이란 마법의 단어가 흩뿌려진다. 하지만 계약서 내용은 촘촘하고, 환불 불가 조항부터 연습 일정 불이행, 심지어 연습생 전형 과정 중 잘린다는 통보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던 세계의 균열이 뚜렷하게 보인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웃는 법을 배우기 전, 서류 앞에서는 울음이 난다. 부모들은 반짝이는 조명 뒤에서 자식의 미래가 ‘학원비 미납’이나 ‘무단 연습 참가’ 같은 말로 정의되는 현실에 당혹을 감추지 못한다.

이토록 어린 꿈이 상처 받는 건, 꿈을 사는 구조 자체가 왜곡된 연예산업 관성과 비정한 시장 논리 탓이기도 하다. 2020년대 중반, K팝 열풍이 아시아와 중남미를 관통하면서, 중소형 학원형 기획사까지 ‘글로벌 오디션’을 광고하지만, 실상 그 문의는 ‘계약금’과 ‘수업료’로 닫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우에 따라선 수십 명을 선발해 몇 달간 그룹 댄스와 보컬을 가르치다, 데뷔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구 하나로 책임을 회피한다. 소비자원은 계약해지 분쟁, 환불 지연, 서비스 미이행, 거짓·과장 광고 피해가 급증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연예기획사의 동의 없는 영상 촬영, 무성의한 수업 진행 등 다양한 갑질 사례를 지적한다.

뉴스 속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하나의 은유로 남는다. “네가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지친 청춘들에게 힘을 쥐여주는 말 같지만, 점점 세밀해지는 계약 작업과 늘어만 가는 개인 부담은, 결국 데뷔 전선보다 훨씬 견고하게 어린이와 청소년을 고립시켰다. 그들은 학교와 집, 애매한 소속감을 오가며, ‘나중에 유명해질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불확실한 파트너십의 미끼가 된 셈이다.

실제로 2026년 들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 사례는 전년 대비 17% 이상 증가했다. 다수의 학원형 연예기획사가 ‘환불 불가’ 문구로 초기 계약금 일부(최고 1500만 원)에 대해 반환을 거부한다. 학원법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에서 이들은 예술교육기관과 사업체의 경계, 문화 상품의 포장지와 자본적 거래의 경계에서 불투명하게 서 있다. 아직도 정식 연예기획사 등록과 학원법 적용 여부에 대한 정책 구멍, 피해 예방 매뉴얼 부재가 지적된다. 법적으로 ‘연예인 지망생’이라 명명되는 순간, 보호받을 수 있는 아동·청소년의 권리는 현저히 줄어든다. 이 기사의 수치는 수백 개의 채팅방,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부모와 청소년들이 매일 주고받는 조언의 현실판이다.

그렇다면 이 신기루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꿈을 좇는 과정 자체는 누구도 탓할 수 없으나, 시스템의 미흡은 반드시 문제로 남는다. 연예·예술산업이 청소년층의 열망을 상품화하는 순간, 그 사회 전체가 필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미성년자의 예술계 진출에 대해 복수 보호자 동의, 환불 보장, 상담 서비스 의무화 등 강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연예기획사 피해 예방 상담센터’ 확대, 표준계약서 도입 논의가 시급하다. 당국의 늦장 대처가 계속된다면, 매해 신인 오디션을 준비하는 수많은 청소년의 미래,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이제 막 노래를 시작한 아이들이, 싹을 내리기 전에 상처부터 받는 불공정한 강의실 풍경. 부모라는 보호막 아래 꿈이 자라는 건가, 아니면 조기 경쟁에 내몰린 또 다른 상품이 되는 건가. ‘학원형 연예기획사’란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표정 너머로 시장의 이중성을 본다. 반짝임과 상처, 희망과 불신이 교차하는 이 풍경 위에, 새로운 제도와 사회적 각성이 시급하다. 세상엔 아직 노래 부르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 그들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지지 않도록, 언젠가는 모두의 빛으로 이어지는 무대를 기다리며—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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