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드러난 대한민국 방산의 현실과 남은 과제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열린 국가 안보 현안 점검회의에서 최근 결론이 난 캐나다 해군 차세대 잠수함 구입 사업에 대해 언급했다. 정부와 방산업계가 관심을 가졌던 이번 캐나다 해군의 신형 잠수함 도입 프로젝트는, 국내 주요 조선·방산 기업들의 참여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한국 업체가 아닌, 프랑스 ‘나발 그룹’과 독일 ‘TKMS’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은 “기대한 만큼의성과는 아니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과 기술력을 국제사회에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며 입장을 밝혔다.
이번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단순한 수주 실패 이상의 정치·산업적 함의를 내포한다. 2030년까지 12척 규모로 총사업비가 60조원을 웃도는 방대한 프로젝트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프랑스, 독일 등 전통적 유럽 방위산업 강자들과 정면 승부를 겨룬 사례다. 특히 정부 주도 아래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 현대중공업, LIG넥스원 등 민관이 뭉쳐 ‘팀 코리아’를 구성, 프랑스·독일과 대등하게 최종쇼트리스트까지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대형 장보고-III급 잠수함 설계·건조 역량, 시스템 통합, 글로벌 조달 경험 등이 인정됐음에도, 막판 ‘기뢰’를 넘지 못했다.
실제 캐나다 정부가 밝힌 선정 기준에는 단순 기술력뿐 아니라, ‘나토(NATO) 동맹 내 네트워크’, ‘기존 군수지원체계’, ‘정치외교적 연계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다. 프랑스 TKMS, 독일 나발그룹은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 주요 회원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다수의 잠수함 플랫폼 납품 경험을 가진 반면, 대한민국은 고성능 디젤-전지식 잠수함 분야에선 비교적 짧은 해외 실적, 제한적 유럽시장 레퍼런스가 약점이었다. 일부 전문가는 “최종 수주전은 이미 방산 실력 그 이상, 지정학·산업 패권 프레임의 각축전이었다”고 평했다.
한국 정부는 박진 외교부 장관, 방위사업청장까지 앞세워 ‘고위급 지원사격’에 나섰다. 외교안보 정책과 방산 세일즈를 동시에 펼쳤으나, ‘노르망디 고지’는 결국 넘지 못했다. 다만, 이번 사례는 분명 대한민국 방산 산업의 새로운 도전과 존재감 과시라는 측면도 남겼다. 방산 관계자들은 “정치·외교적 연계와 무관하게 순수 기술력 경쟁만을 기준으로 했으면 결코 뒤처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 현지 매체와 국제 방산 전문지 등은 한국의 장보고-III AIP 잠수함의 신뢰성, 자동화 시스템, 운용 효율성을 높이 평가했다. 결국, 유럽 구도 속 프랑스와 독일의 아성에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음을 확인시킨 셈이다.
외교안보 관점에서 이번 무기수출 실패의 배경에는 최근 글로벌 방산 내 ‘동맹 우선주의’와 ‘자국 공급망 강화’ 트렌드가 짙게 읽힌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유럽 각국이 방산 주권·유지보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 한국 등의 기술 선진국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이 점차 높아지는 구조다. 윤 대통령 역시 “한계 너머에 또 다른 과제가 있음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산업계 전문가들은 “기술력과 가격경쟁력만으론 부족, 동맹/협력 네트워크 자체를 자산화하는 고도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우리 정부와 산업계에선 군수산업 외교, 현지화 전략, 글로벌 규제 대응능력 강화 등의 필요성도 다시 대두됐다.
야권 일각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와 업계가 지나치게 낙관론만 부추겼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실제로 최근 10년 사이 대한민국 방산 수출 성장세와 기존 강자와 ‘기술 실력’ 격차 감소를 인정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세계 무기시장 구조가 점차 기술집약·고부가가치, 운영 후지원까지 확장되는 가운데, 한국의 롤모델 전환과 글로벌 플레이어로의 도약 욕심이 이번 무대에서 분명히 확인됐다. 프레임 변화 역시 주목된다. 과거 한국 방산이 동남아, 중동 시장 위주 ‘중저가형’ 이미지에서, 프랑스/독일과 맞붙는 ‘최고급 프리미엄 디펜스’로 새로운 입지를 시험했다는 점엔 부정할 수 없는 진전이 있다.
하지만, 이 기회비용은 상당하다. 10년간 수출 허브, 첨단 장비 수주/운영 노하우 축적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대규모 일자리/부가가치 창출 효과도 놓쳤다. 반면, 이번 도전이 “대한민국 방위산업 역량이 더 이상 저비용 생산형(노동집약형)이 아님을 국제사회에 증명했다”는 평가 역시 부각된다. 단기적 아쉬움에 머물지 않고, 중장기적 규제개혁, 글로벌 협력 기반 확대, R&D 투자 강화가 동반돼야 ‘방산 K-콘텐츠’로의 진화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강자의 고정된 프레임을 거세게 흔들고 있단 점, 즉 대한민국이 방산 신흥강국을 넘어 ‘최고기술 강국’ 반열로 가는 이정표임을 확인한 대목이다.
정치적으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이 산업정책·미래성장 프레임을 강화하는데 있어 “한 번의 실패가 아닌 성장통”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반면 야권에서는 ‘대외 세일즈 쇼맨십’과 ‘실질 성과 간 괴리’를 지속적으로 파고들 태세다. 이처럼 방산 경쟁력이 곧 국제 정치역량, 첨단산업 입지와 연결되는 국가 파워게임의 시대.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권력판 위에서 전략을 다시 짜고 선수로 뛰고 있다. 이번 잠수함 사업은 단순한 수주전 패배로만 볼 일이 아니다. 산업적, 외교적 교훈이 더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기대’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번에는 ‘결과’를 내는 것이 한국 방위산업의 의무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