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친일인명사전’을 품은 소설로 시대를 마주보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불의에 대한 문학적 저항”이란 수식어가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소설가 성해나의 신작이 출간을 알렸다. “친일인명사전”을 읽으며 출발선에 선 그의 창작 과정에는 한국문학사가 오랜 시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꺼려온 주제를 응시하는 불온함과 용기가 동시에 배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서술도 아니고, 도식화된 고발문학의 틀에도 갇히지 않는다. 성해나는 역사적 사실의 무게 위에 인간의 욕망, 책임, 그리고 시대의 불의를 촘촘히 짜넣음으로써 ‘우리 안의 문제’를 문학의 언어로 집요하게 파헤쳤다.
흙바람이 불던 지난 세기, ‘친일파’란 단어는 때로는 금기어였고, 때로는 냉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여전히 미결의 숙제다. 성해나의 소설은 ‘친일인명사전’을 자료적 기반으로 삼는 동시에, 살아남은 이들이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비겁함과 침묵, 복잡하게 얽힌 욕망과 변명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작가는 인물 하나하나에 시대의 그림자를 덧씌우면서 선악의 이분법에 함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 스스로 행간의 질문에 맞닥뜨리게 한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해석된 과거의 파편들은 지금의 우리와, 다가올 미래의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음을 역설한다.
성해나는 소설 속 각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그리고 때로는 잔인하리만치 솔직하게 해부한다.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 이들, 미련하게 맞선 이들, 침묵과 단념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했던 이들… 작가는 그들의 괴로움과 변명을 동정도, 분노도 아닌 분석적 거리를 두고 드러낸다. ‘친일인명사전’의 이름들은 살아 있는 가족과 후손,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는 침묵의 카르텔까지 소설 속에, 그리고 우리 현실 속에 던진다. 이는 국적이나 세대, 신념을 뛰어넘어 시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에까지 시선을 끌고가는 힘이 느껴진다.
이런 창작 태도는 한국문단에서 보기 드문 장기적 시선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용서와 화해를 서둘러 종결지으려는 사회적 분위기, 역사 바로세우기와 진상 규명의 피로감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성해나는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덮어버리려는 조급한 손짓에 저항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역사 인물의 데이터를 드라이하게 소비하지 않으려 한다. 인물의 미처 기록되지 않은 순간, 잊힌 욕망과 숨겨진 선택의 저의를 문학적 언어와 상징으로 재구성한다. 그리하여 독자 스스로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고, 우리 시대의 ‘불의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 앞에 머물러 있게 한다.
실제로 ‘친일인명사전’은, 지난 21세기 초 출간 당시에 이미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던 프로젝트였다. 생존 후손들의 반발과 법적 다툼, 언론의 정치적 프레임 공방이 뒤섞인 그 역사적 과정을 잘 아는 독자라면 소설에 드러나는 미묘한 텐션과 씁쓸함, 의도적 모호성이 더욱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단죄와는 멀리서, 인간의 한계와 책임에 초점을 맞추는 점에서 프랑스, 일본을 포함한 근현대 비판문학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내면에 새겨진 시대의 주홍글씨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비상구 없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현대 한국문학에서 역사 왜곡과 친일 청산이라는 주제는 셀 수 없이 많은 변주를 거듭해 왔다. 그럼에도, 작품들이 대체로 ‘잊힌 이름’에 그칠 때가 많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반면, 성해나의 소설은 도도한 주제의식을 인물의 작은 습관이나 대화, 침묵의 결에까지 침투시킨다. 예컨대, 초라하고 왜소해진 노년의 인물들이 여전히 지니는 불안, 부채의식, 혹은 조용한 자기기만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시대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자각에 이른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당대의 윤리적 고민이 단순한 과거청산을 넘어,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자기 성찰’의 거울로 작동한다.
최근 국제적으로 ‘파시즘의 귀환’ ‘가짜뉴스와 집단 침묵’ 등 역사적 반성과 비판정신의 후퇴가 논의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성해나가 선택한 소재와 시선은, 일본 사회에서 ‘과거사 덮기’가 반복적으로 문제 되는 것처럼, 한국사회 역시 권력자와 시민 모두의 실존적 경각심을 자극한다. 한국 영화·드라마계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던 ‘밀정’, ‘암살’ 등과는 달리, 피상적 액션이나 결기보다는 ‘침묵의 시간’을 끌어안는 엄정함이 빛난다. 이 점에서 본 기자는, 성해나가 단순히 ‘올바른 역사’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해야 할 불편한 진실에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고 본다.
결국, ‘친일인명사전’ 소설화에 담긴 시대정신은 잊히는 역사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오늘의 문제’임을 문학적으로 다시 일깨운다. 읽는 내내 감당하기 힘든 숨이 턱 막히는 무게감이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성해나가 믿는 문학의 윤리와 책임 아닐까. 시대의 불의를 이토록 집요하게 파고드는 문학, 그것이 한 사회가 건강함을 증명하는 방식이자, 침묵을 거부하는 가장 용기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