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신의 그림자와 노동의 재정의…사회계약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2026년,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대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14일 노동부장관은 AI가 만들어 낸 천문학적 성과의 밑바탕에 일하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이윤의 분배 방식, 노동·복지 체계까지 근본적인 재설계가 불가피함을 시사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실상 수년 간 반복되어 온 ‘혁신=성장’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이미 대다수 국민의 생계와 미래가 기술패러다임 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음을 의미한다.
AI와 자동화의 파도는 노동시장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제조업·플랫폼·사무직 등 어떠한 영역도 더는 예외가 아니며, 기존의 ‘기술 수용=고용 창출’ 공식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글로벌 대형 IT기업의 연쇄적 감원, 국내 금융·서비스업의 고도 자동화, 각종 채용의 감소 추세는 이러한 전환이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임을 입증한다. 특히 AI가 단순·반복 업무는 물론, 고숙련 백오피스 영업 현장까지 대체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과거식 직업 훈련이나 단기 고용 창출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분명하다.
‘새로운 사회계약’이란 담론이 등장하게 된 맥락에는 두 가지 현실적 쟁점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AI가 만들어내는 초과이익의 분배 구조. AI 기술 개발은 자본, 데이터, 플랫폼,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 노동력 및 사회 구성 모두의 기여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현실의 이익 분배는 여전히 대기업 및 자본 소유주에게 집중되고, 파생되는 사회적 비용은 취약계층, 플랫폼 종사자 등 하위 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둘째, 이를 조정할 사회·정치적 방식의 부재다. 현재의 노동법·복지법제는 여전히 표준 근로계약, 정형적 일자리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플랫폼과 프리랜서, 비정형 노동이 확장되는 가운데 고용 안전망과 소득지원, 법적 보호도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다른 주요국 사례를 보면 흐름은 한층 선명하다. EU, 미국 등에서는 AI로부터 파생되는 이익 일부를 사회기금 혹은 실업보험 확대에 재투입하는 ‘이익공유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 재정의, 디지털세 및 초이익세 도입 논의가 현실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라는 이중 트랙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으면, 혁신이 곧바로 새로운 불평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위기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로 OECD 통계를 보면, 디지털·AI 투자국가일수록 저숙련·비정형 노동자의 소득 분배 불균형이 악화되는 경향이 확연하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AI 기반 대기업들의 실적은 역대급이나, 2~30대 청년 구직난·중장년 조기실직·서비스업 불안정 일자리는 빠르게 확산중이다.
이 시점에서 장관의 언급이 시사하는 바는 ‘AI 시대의 계약관계 재정립’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법·제도 개혁의 신속한 실행이다. 노동시장 구조와 사회계약의 재정의는 선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AI 기술로 발생한 초과이익의 과세 및 사회환원 구조 설계, 둘째, 플랫폼/비정형 노동자를 포괄할 새로운 노동법 적용, 셋째, 직업훈련 체계의 노동시장 변화 실시간 연계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계층별·연령별로 AI의 위협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미시적으로는 ‘전환 지원’, 거시적으로는 ‘분배 구조 개혁’이라는 이중 과제의 실천이 불가피하다.
법조·사회 전문가들은 이미 “과거 산업혁명기 ‘포디즘적 사회계약’이 산업자본-노동-국가 간 역할과 책임을 조정했던 것처럼, 이제 AI 시대로 전환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행 노동·복지 체계를 AI 시대의 불확실성과 파편화된 노동시장에 맞게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실제로 AI가 인간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기존 계약관계가 해체되는 속도는 법/제도의 변화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등 글로벌 보고서에서도 “AI시대 사회적 충격을 누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란 질문이 반복 제기되고 있다.
결국, AI와 혁신이 초래할 새로운 사회계약이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분배 구조, 혁신성과의 민주적 공유, 그리고 사각지대 없는 법적 보호를 실현하는 제도·정책 개혁으로만 가능하다. 현장 노동자의 경험과 기여가 ‘숫자로만’ 환산되는 사회는 지속 불가능하다. 정부의 담론이 실질적 법/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AI 혁신의 혜택과 위험의 격차는 더욱 깊어질 것이 뚜렷하다. 지금이야말로 AI 성과를 ‘정의롭게 사회화’하는 새로운 틀짜기가 전 사회적으로 요구되고 있다고 본다.
— 서지현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