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제로로!’—청년들의 손끝에서 다시 쓰는 에이즈 예방의 희망
4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 끝에서, 박지환(23) 씨는 방 한구석에서 휴대폰으로 짧은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매일 뉴스에서 스치듯 듣던 ‘에이즈’, 늘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라 여겼다고 했다. 그런데 “작은 짤막한 영상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더라고요.” 박 씨는 질병관리청이 개최하는 ‘제대로, 제로로! 에이즈 예방 숏폼 콘텐츠 공모전’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에이즈와 HIV 감염인의 삶에 귀를 기울였다.
질병관리청은 2026년 7월, 국내 HIV 신규 감염자의 절반 가까이가 20-30대에 집중된다는 현실에 주목했다. 2025년 한 해 신규 감염 사례는 1,137건을 기록해 전체 보건 학계에 경각심을 일으켰다. 더 이상 에이즈(HIV/AIDS)는 특정 집단이나 타인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 속의 예방과 이해’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번 공모전은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를 청년, 나아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숏폼’으로 위트 있게 전환해 내는 실험적 기획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이 영상을 통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숏폼이라는 매체를 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적으로도 HIV의 증가세는 여전하다. 유엔에이즈(UNAIDS)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2026년 현재 약 3,800만 명이 HIV에 감염돼 있으며, 매년 약 130만 명이 신규로 감염되고 있다. 기술과 정보가 어느 때보다 발전한 시대지만, 우리 사회의 편견과 침묵은 여전히 문제다. 실제로 익명성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지난해 본지와 만났던 감염인 미리(가명) 씨는 “무심코 무시하거나 말 한마디로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숏폼을 통한 예방 캠페인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전달뿐 아니라, 소외와 낙인을 차츰 걷어내는 역할까지도 기대된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의 감수성에 맞춘 짧고 직관적인 메시지는 오래 머물러 있던 ‘에이즈 혐오’의 벽을 허무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청소년들이 평소 쓰던 언어와 이모지, 리듬이 섞인 영상은 지루한 교과서, 거리의 포스터가 놓치던 틈새로 파고든다. 실제로 최근 유튜브·틱톡 등 SNS에서 LCD(소수자 건강 디자이너) 그룹, 동아리·비영리기관이 만들어가는 영상 콘텐츠의 파급력은 전통 언론을 압도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 영상들이 단순히 ‘조회수 쌓기’에 머물지 않으려면, 실제 감염인에 대한 이해, 차별 없는 일상생활, 예방 교육의 내실이 필수라는 현장의 지적 또한 팽팽하다.
공모전은 영상 분야의 크리에이터, 대학생, 혹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즉, 에이즈라는 주제가 뭐랄까 ‘학교 숙제’처럼 어렵지 않도록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참가자들은 ‘*정기검사, 안전한 성생활, 조기 진단*’ 등 행정 메시지를 넘어, 실제 내 친구, 형제, 이웃의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함께 배운다. 숏폼 캠페인의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학생 박현지(20) 씨는 “사실 에이즈에 대해 잘 몰랐고, 위험하다는 인식만 강했어요. 근데 직접 영상 소재를 조사하고 보니까 내 주변의 누구나 조심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다. 가정·학교·직장에서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정보 공유 방식이 필요하다는 절실함도 느껴진다.
다른 나라 사례를 더해본다. 영국 공중보건국(Public Health England)은 2020년대 초반부터 ‘Testing Saves Lives’란 제목으로 숏폼 영상을 활용, HIV 자가검사 키트 사용법, 검사 후 처리 방법까지 쉽고 명확하게 안내해왔다. 이에 힘입어 정기 검사율이 10% 가까이 증가했고, 동년 감염 고위험군의 신규 확진자 수가 감소하는 효과를 보았다. 한국 역시 2026년을 맞아 2차 예방 위주에서 나아가, 디지털 기반 시민 주도의 정보 공유로 변곡점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점은, ‘두려움’을 자극하기보다 서로 곁에 있는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인식의 변화다. 최근 에이즈는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질병임이 입증됐다. 감염인 중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당당히 사회 생활을 꾸려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말 못할 병’으로 내몰려 스스로 격리되었던 이들을 품 안으로 끌어내는 힘은, 정보 공유와 공감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질병관리청의 ‘제대로, 제로로!’ 캠페인이 앞에서 언급한 미디어 기술의 힘,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따뜻한 손길에서 진심어린 변화를 시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변화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씩 바꿀 것이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