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포커스] 승자가 곧 내 팀? 변화하는 KBO 팬덤의 명암

8월 19일, 야구팬 문화의 새로운 풍속도에 대한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긴 팀이 우리 팀’이라는 농담 절반, 현실 절반의 멘트가 낯설지 않은 KBO 현장. 올 시즌 들어 특히 두드러지는 이 ‘책임 없는 쾌락’ 문화는 지난 주말 대형 라이벌전을 기점으로 극대화됐다. 잠실구장만 봐도 경기 종료 후 팬들의 유니폼에 팀 컬러 통일감이 없고, 다양한 구단 기념품이 뒤섞인다. 오늘은 LG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이가 내일은 SSG의 슬로건을 외친다. 관중석의 응원열기와 현수막 문구에 비해, 승부의 향방이 확정되는 순간 팬심의 무게는 재조명된다.

이 현상의 뿌리는 어디일까. 실시간 승부예측, 스포츠 베팅 붐, SNS 속 짧고 강한 소속감 전이 등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과거처럼 한 팀에 인생을 걸던 ‘찐팬’은 줄었고, 대신 경기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태세를 전환하는 팬들이 늘었다. 올해만 해도 전통 명문 구단들의 성적이 들쭉날쭉하고, 일부 구단은 관중 동원에 있어서 ‘핵심 팬층’의 이탈을 뼈아프게 체감한다. 특히 10대~20대 초반 야구 팬 신규 유입자들은 특정 선수, 개인 플레이에 호감을 보이다가 수시로 응원 대상을 바꾼다. KBO리그의 티켓 예매 기록, 팬 상품 판매 동향, SNS 응원 태그 분석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프라인 현장과 온라인 여론 모두 ‘진영 의식’이 느슨해졌다.

경기장에서 직접 보면 변화의 실감이 크다. 올여름 KIA-LG전에서 만난 한 관중은 “누가 이기든 적당히 재밌게 보면 되죠. 오늘은 친구 따라 LG 응원, 내일은 아버지랑 두산 응원합니다”라고 말한다. 응원단상 앞을 뜨겁게 달구는 열정적 베테랑 팬들이 여전히 있지만, 관중석 후면 좌석에는 ‘이긴 팀 옷 입고 사진 한컷’ 찍는 젊은 팬그룹이 자리한다. 실제로 팬들은 페넌트레이스 구간에선 플레이오프권 팀에 더 쉽게 몰리고, 최상위팀이 연승을 달릴 땐 잠깐의 유니폼 품귀현상까지 벌어진다. 한 경기 내내 흐르는 응원가가 경기 막판 팀 백넘버마다 바뀌는 모습도 풍경이 됐다.

이와 동시에 팀에 대한 ‘책임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누가 졌냐는 질문에 “오늘은 그냥 게임 보는 입장”이라고 웃는 팬, 패배한 팀 유니폼을 다음 경기부터 곧장 벗는 모습이 반복된다. “진 팀 팬도 되고 싶은데, 승자만 환영받는 분위기”라는 자조도 들린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이런 기류가 격화돼, 결승 진출팀만 단기적으로 ‘국민팀’ 신드롬을 누리기도 한다. KBO 역사상 최다 연승·최다 관중 집계가 특정 팀의 3연승 구간과 정확히 겹친 건 우연이 아니다. 스포츠 팬의 전통적 속성, 즉 패배와 좌절, 그리고 인내가 체험 가치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현장에서는 두 가지 시선이 맞선다. 일부는 “관심 받고 즐겨주는 것만으로도 리그가 풍성하다”고 환영하고, 신생 또는 저연차 인기 구단 마케팅 파트는 “다양한 팬, 다양한 소비 형태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구단 프런트들은 ‘충성도’ ‘재방문’ ‘팬 고유 스토리’ 등에서의 밀도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홈경기 시즌권자와 펜클럽 고참들은 미묘한 소외감을 호소한다. 정통 스포츠 팬덤 문화를 생각할 때, 승부판 따라 변하는 ‘유동 팬심’의 존재감은 논란거리다.

경기 측면에서 보면 관중들의 응원몰이는 선수 개별 퍼포먼스에 큰 영향을 끼친다. 8월 12일 두산-삼성전에서는 결정적 순간마다 조용해지는 스탠드, 다음 타석에서 ‘재빠른’ 응원 대상 전환이 눈길을 끌었다. 승부에 따라 바뀌는 열기는 홈팀 선수들에겐 미묘한 압박이며, 원정팀 선수들에겐 예상치 못한 심리적 이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경기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길 때만 관중이 크게 환호한다”는 선수들의 하소연이 늘었다. 한 외국인 선수는 “여기는 분위기가 NBA보다 더 유동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인기 종목과의 비교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V리그, K리그와 달리 KBO는 경기당 관중 볼륨, 농축된 지역색이 큰 강점이었으나 최근 팬덤 ‘유동화’ 흐름이 속도를 내는 중이다. 이런 현상은 일부에선 리그 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주장과 함께, 장기적으로 ‘팬 충성도 하락’이란 심각한 위험 신호로 해석된다. 팬의 역동성만큼이나, 야구장 분위기 자체가 예측불허다. 구단 프런트, 마케팅팀, 선수단 스트레칭 담당까지 누구도 그날 팬의 응원 방향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쯤에서 KBO 각 구단과 리그 사무국이 해답을 찾아야 할 시기다. 변화하는 팬심과 새로운 응원문화 속, 어떻게 정통성을 지키면서 미래 팬덤을 잡을 것인지는 KBO 전반의 화두다. 경기력만큼 중요한 건 팬과의 유대, 경험의 연속성이다. 오늘도 각 구단 벤치는 ‘우리 팀’이란 구호가 지닌 무게에 대해 고민하며 야구장에 선다.

— 한지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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