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황’ 없는 EPL, 26-27 아스널의 새 시대…누가 런던 제국을 무너뜨릴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펩 과르디올라가 떠났다. 2026년 EPL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는, 한 시대의 전술 장인의 막 내림과 동시에 프리미어리그 26-27 시즌이 시작됐다. 긴장감은 경기장 잔디 위에 그대로 맺혀 있다. 수년간 프리미어리그의 전장 한가운데서 패싱 바리에이션과 압도적 점유율, 포지션 플렉서블리티라는 무기를 휘두르던 ‘펩시황’의 시대는 이제 역사로 남는다. 이제 챔피언의 왕관을 인수받은 아스널이 사령탑 미켈 아르테타와 함께 디펜딩 챔피언 자리에 도전장을 받게 됐다.
“펩이 떠나니 EPL이 달라졌다.” 커뮤니티 곳곳에서 터지는 이같은 탄식과 기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과르디올라 휘하의 맨체스터 시티가 수직적 패스빌드업, 하프스페이스 오버로드, 변칙적인 3-2-4-1 시스템으로 유럽 축구계를 교란하는 동안, 타 구단들은 살아남기 위해 숨죽인 채 집단적 프레싱 강화와 스쿼드 뎁스, 과감한 세컨드 라인 공격 자원 확보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결국 EPL 전술 지형도에 거대한 지진을 불러왔다.
아스널은 그 진원지의 중심에서 새로운 왕조 구축을 향해 달려간다. 25-26 시즌 내내 리스 넬슨, 카이 하베르츠, 부카요 사카, 그리고 마르틴 외데고르의 빠른 연계와 높은 유동성, 벤 화이트-가브리엘-살리바로 구축되는 강단있는 빌드업 라인이 만들어내는 디테일은 전술적 측면에서 압도적이었다. 아르테타 감독의 ‘거리 줄이기+공간 기만’ 원리를 제대로 소화하며 하프스페이스에서의 수적 우위, 측면 오버래핑 문제, 세컨드볼 관리까지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수치는 거짓말을 모른다. 아스널은 팀당 유효 슈팅, 세트피스 득점, 하프스페이스 침투 성공률 등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챔피언 팀임을 입증했다.
‘펩시황’ 터전이 사라진 EPL에서 이제 누가 도전자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에릭 텐 하흐 장기 집권 체제 아래 젊은 피 코비 메이누와 고비노비치, 브루노-카세미루의 2차 빌드업 조합에 새로 영입된 윙어 쿤야까지 가세, 역동적 4-2-3-1 토털풋볼을 실험한다. 그러나 여전히 종적인 템포 조절, 숏패스와 롱패스 밸런스, 수비 전환 속도 등에서 명확한 한계를 노출한다. 리버풀은 아르네 슬롯 신임 감독 아래 예리한 전방 압박, 풀백 컨버전스 롤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개를 모색하나, 미드필드 지배력에 있어서 아스널의 견고함엔 아직 거리가 있다.
첼시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와 결별 후 25-26 시즌 중반부에 부임한 미구엘 무뇨스 감독이 젊은 전력 중심으로 트랜지션 강화에 올인한다. 엔조 페르난데스-카이세도 포지션 체인지를 감행하며 속도 중심 구조를 시도하지만, 수비 시 조직적 실수와 하프스페이스 공간 노출은 숙제로 남는다. 토트넘 핫스퍼는 포스트켄 전략에 여전히 고심, 사르-히샬리송-마디슨-쿨루셉스키의 좌우 밸런스는 빼어나지만 득점력 부재, 중원 이탈 시 위험 노출이라는 익숙한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
변수는 뉴캐슬과 애스턴빌라, 브라이튼이다. 세계 자본으로 보강된 뉴캐슬은 브루노 기마랑이스, 알렉산더 이삭의 전방 위협과 브로토노를 기점으로 한 빠른 속공에서 날카로운 일격을 노린다. 하지만 아스널의 빌드업 압박과 중원 커버 범위, 세컨드 라인에서의 역동성 앞에서 이 팀들 역시 완성도에 한계가 뚜렷하다. 전체적으로, 아스널 체제의 가장 강점은 풀백-윙어 라인 연계와 하프스페이스 인버전-호라이즌 프레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즌 준비과정 프리시즌 매치에서 보여준 전술 변화와 선수 개별 전술 이해도 역시 경쟁자들에 비해 한 발 앞섰다.
따라서 26-27시즌 EPL은 전형적인 ‘지배자-추격자’ 구도가 뚜렷하다. UEFA 챔피언스 리그와의 병행, 시즌 내내 이중 대회 압박과 부상 변수는 언제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그렇지만 아르테타 체제의 안정감, 선수단 내구성과 세컨드 라인에서의 전술 유연성은 현시점 가장 돋보인다. 더구나 ‘펩 출신 사령탑’이라는 배경에서 아르테타의 전술적 정체성은 한층 더 진화 중이다. 그는 플레어 플레이를 바탕으로 빌드업의 리듬, 압박의 타이밍, 공격 조율 능력을 경지에 이르렀다. 아스널의 공격 전개 속도는 ‘역습 속 집요한 패턴 플레이’로 진화했고, 리버풀·맨유 등 타 경쟁 구단 대비 후반전 대응, 교체 카드 활용 등 운영 능력이 단연 우위에 서 있다.
결국, ‘포스트 펩시황’ EPL을 이야기하면서 단순히 아스널과 도전자들 간의 전력 구도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새로운 리그의 중심축이자 전환점으로서 아스널이 제국을 이어갈지, 맨유-리버풀-첼시의 반격이 먹힐지, 아니면 뉴캐슬 등 신흥 강호가 문법을 뒤집을 지 지켜봐야 한다. 전술적 세대교체, 스쿼드 관리, 그리고 EPL 특유의 예측불가능성과 피지컬이 녹아드는 26-27 시즌, 팬들은 또 한 번 숨 돌릴 틈 없는 9개월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경기를 보는 눈, 판을 읽는 힘. 그리고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열정이 시작될 시간이다. ‘펩 없는’ EPL, 곧장 온도를 높이며 전장에 첫 휘슬이 울린다.
— 김태영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