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바다로 뛰어든 언어의 혁신 —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로 노작문학상 수상

김혜순 시인의 새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가 제43회 노작문학상을 안았다. 현장에서 전해진 수상 소식은 더운 9월 밤조차 잠시 잊게 만든다. 오랜 시간 여성의 언어, 존재의 심연에 고개를 깊이 들이민 김혜순은 ‘아네모네’의 흐드러지는 몸짓으로 또 한 번 시대에 질문을 던진다. 시인 자신이 말하듯, 이 시집은 “수면 아래로 천천히 잠기는 작은 생물의 집단적인 꿈”을 닮았다.

싱크로나이즈드, 즉 동기화된 움직임이란 말은 수면 위에서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파동에도 어울린다. 김혜순은 거센 시대의 타격과 사뭇 다른 질감의 언어로,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게 흔들리는 바다의 ‘아네모네’들을 끌어안는다. 그의 시구는 서늘한 물결 위로 스며드는 듯하다가도, 급작스러운 파도처럼 마음을 덮쳐온다. 독자와 평단이 과연 이 집단적 ‘잠수’에 동참할래 묻는 듯, 작고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수상작 선정위원회는 “불가해한 동시대의 현실을 흔들리는 바닷속의 사물과 생명에 투영했다”고 밝혔다. 그의 언어는 제한 공간조차 물처럼 넘나들며, ‘나’와 ‘우리’, 육체와 비육체, 기억과 망각을 바다의 심해처럼 뒤섞는다. 이번 작품에서도 김혜순 시인은 허공의 은유 위에 생명과 죽음, 광기와 침묵을 촘촘히 새기기를 멈추지 않는다. 익숙한 일상의 파편까지도, 바닷물에 씻겨 새로운 세계로 건너간다.

김혜순의 시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면 끝내 드러낼 길 없는 심해의 보라—그런 감정과 사실 사이, 언어가 미끄러지는 낯선 표면에 닿는다. 수집된 단순 이미지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계속해서 맥박치는 존재의 운동. 이번 시집 역시 서로 다른 리듬에 맞춰 부유하는 목소리들을 끈질기게 선언한다. 여성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하나의 촉수로 세계를 더듬으며, 불안과 고독, 결핍의 서사가 다양한 생명력으로 표출된다. 같이 숨을 멈추고, 어둠 속을 헤엄쳐가고 싶은 유혹. 세상과 동기화돼 살아가는 우리가 ‘싱크로나이즈드’란 단어 앞에서 멈칫하는 한 이유가 아닐까.

한국 현대시는 어느새 2020년대를 건너며 지난 10여 년간 기계와 인간, 여성성과 눈물, 침묵과 선언을 반복해왔다. 김혜순은 그 사이사이에, 조금은 기묘하고 익숙지 않은 발화 지점을 찾아낸다. 다른 세대와는 달리, 그는 심연을 낭독하기보다 직접 잠수한다. 언어의 폐들이 끝까지 물살을 끌어안는다. 김혜순은 끊임없이 ‘바다’를 호명한다. 바다는 정체와 변화, 죽음과 재탄생을 상징한다. ‘아네모네’는 그 바다에서 집단으로 춤추는 작은 생명들, 이 땅의 시인과 독자, 여성과 타자를 상징한다.

노작문학상은 시의 사회적 무게와 시대성과 더불어, 새로운 언어에 대한 도전 정신에 무게를 둔다. 이날 시인은 직접 “내 시가 오늘날 바다 건너 독자들에게 어떤 파동으로 도착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시를 읽는다는 것, 그것이 꼭 문학의 경계에 국한된 행위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매일의 생활, 개인의 기억과 크고 작은 상실을 담아내는 모두의 ‘아네모네’이자, 각각이 어딘가에서 파도치는 ‘싱크로나이즈드’의 몸짓을 지닌다.

독자로서, 비평가로서, 때로 창작자로서도 우리는 물의 언어 앞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하게 된다.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는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시간의 층위, 내면화된 불안과 사회적 선언 모두를 한데 묶는 새로운 결절점이다. 이 시집의 리듬은 잔잔한 흐름을 택하기보단, 때로는 거칠고 경쾌하게 심장을 겨냥한다. 수상 소감처럼 “바다를 걷는 듯 낯설고 투명하게” 언어는 다시 태어난다. 세상을 살짝 들어 올릴 수 있는 시의 힘, 무게 없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진한 울림 앞에서 우리는 고요한 탄성을 내뱉는다.

김혜순의 아네모네들은 혼자가 아니다. 독자 역시 그 파도에 섞여, 함께 몸짓할 수 있다. 이 밤, 서가 한편의 책등을 조용히 쓸어내리며, 내일은 호흡을 맞춰 바다로 잠수해 볼 일이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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