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횡성숲체원, 숲과 전통이 어우러진 막걸리·비빔밥 체험 ‘숲향캠프’
강원도의 하늘이 유난히 깊었던 어느 초가을 저녁, 국립횡성숲체원에 이르면 구수한 막걸리 향과 고소한 비빔밥의 소박한 내음이 골짜기를 감쌉니다. 산뜻한 이끼 냄새와 바스락거리는 낙엽, 쫄깃한 흙내음이 머무는 길목마다, 전통이란 고요한 유산이 느릿하게 흐르지요. 이번에 선보이는 ‘숲향캠프’는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을 넘어, 자연과 식문화가 오롯이 만나는 현장입니다. 캠프는 한국 고유의 먹거리인 막걸리 빚기와 비빔밥 만들기, 숲속 산책, 그리고 이야기 나눔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합니다.
막걸리 체험장에서는 강원도의 맑디맑은 물과 지역에서 나는 쌀, 누룩을 버무립니다. 부드럽게 떨리는 손끝에서 반죽이 차곡차곡 매만져지고, 막걸리에 숨겨진 풍미가 온몸으로 퍼집니다. 누릉지처럼 두툼한 흙바닥에서 일어나는 담백함, 마치 숲속 이슬 한 방울이 입안에서 톡톡 튀는 느낌이지요. 강사가 전하는 쌀과 물의 비율, 물입김이 견고히 밴 항아리의 둥근 그림자는, 조상들의 오랜 지혜와 기다림의 여운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단순히 마시는 술이 아닌, 들판의 결과 손수 만든 시간의 결이 합쳐진 술 한 잔은 어느새 가슴 깊이 스며듭니다.
비빔밥 만들기 체험에는 각종 산채나물과 고소한 참기름, 직접 달인 고추장이 어우러집니다. 손수 산에서 채집한 싱그러운 채소들이 정갈하게 가지런히 올려진 흰 쌀밥 위로, 한 그릇이 완성되는 순간은 늘 경건합니다. 따뜻한 햇살을 가르며 솟아오르는 나물 내음을 맡노라면 도시의 바쁜 속도를 잠시 내려놓게 됩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강산을 내려다보며 한 숟갈 비빔밥을 삼킬 때, 이곳에 흐르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죠.
‘숲향캠프’의 핵심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경험입니다.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손에 쥔 막걸리 반죽에서 낄낄 웃음이 터져 나오고, 어른들은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습니다. 숲에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자연의 품 안에서 오감을 가득 채우는 이 소박한 시간이 곧 삶의 축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최근 전통 식문화 연계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양구 DMZ마을의 된장·고추장 만들기 체험, 제주 조천읍의 해녀밥상 습득 행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횡성의 ‘숲향캠프’는 천혜의 자연 속에서 음식과 이야기가 서로 스며드는 특별함이 단연 돋보입니다. 숲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고, 전통음식 체험은 그 기억 위에 색을 얹는 붓이 아닐까요.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점점 멀어진 삶의 배경이 되었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와 함께, 또는 사랑하는 이와 조용한 숲길을 거닐다 보면, 일상에 묻혔던 소확행이 번져옵니다. 한 잔의 막걸리에 하루의 피로도 풀립니다. 늘 반복되는 인스턴트식, 자극적인 풍경 사이에서 익숙한 속도가 아닌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은, 이 체험이 가지는 큰 의미입니다.
기자의 눈으로 보면 이곳은 단순한 음식 여행지가 아닙니다. 향토성이 녹아든 교육의 공간이자 가족 모두에게 깊은 대화를 선물하는 치유의 무대입니다. 물리적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다양한 세대와 세대 사이도, 비빔밥 한 그릇을 함께 나누며 자연스럽게 공감이 시작됩니다. “함께 만든 것, 함께 먹은 것”이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
막걸리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누룩은, 마치 눌러두었던 기억을 천천히 꺼내듯 우리의 속내를 들춰봅니다. 자연과 전통음식이 만나는 숲길 위에서 작은 축제가 피어납니다. 이곳에서 나눈 한 끼, 한 잔, 한 줄기의 바람은 오래도록 따스한 결을 남깁니다.
푸르른 횡성 산자락은 전통과 가족, 자연과 현대인의 삶을 잇는 다리 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끼 식사의 울림, 숲 향기에 실린 고즈넉한 위로가 더 널리 확산되기를 소망하며, 이번 ‘숲향캠프’가 단순 체험을 넘어 일상의 귀한 쉼표가 되길 바라봅니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