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업의 허상, 호실적에 가려진 ‘마켓 피로감’ 그리고 삼성·하이닉스의 위험한 게임
AI라는 단어에 시장이 환호하는 시절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AI 한방’에 기댄 주식시장의 활기마저 피로감에 짓눌리는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잇따른 호실적을 기록하며 국내 증시의 기대감을 이끌어내지만, 그 실적 뒤에 ‘버블의 그림자’와 갉아먹는 내부 우려가 교차한다. 거침없는 업계 실적 호조 소식에도 불구, “실적만큼 주가가 안 오르네”라는 목소리가 시장에 쏟아진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및 AI 인프라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역대급 분기 성장치를 보였다. 글로벌 AI 서버·데이터센터 수요 폭증과 HBM 고성능 D램 공급이 견인했다. 하지만 정작 투자자들의 표정은 어둡다. 실적 발표 직후 일부 반짝 상승 이후 다시 피로한 박스권 움직임, 매도세가 번지고 있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익은 ‘어닝 서프라이즈’로 평가됐지만, 신고점 대비 주가 반등은 미미했고 개인투자자 상당수는 ‘기대 이익 미달’을 호소한다. 하이닉스 역시 ‘AI 특수’라는 이름의 실적 랠리에 들떴으나, 이후 증권사 리포트마다 ‘옥석 가리기’, ‘익절 매도 타이밍’ 같은 단어가 늘었다. AI 열풍, 그 이면에 숨은 리스크와 구조적 허점을 점검해야 할 때다.
문제의 기저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시장 예상을 상회하는 실적이 이미 ‘선반영’됐다는 점. 둘째, 실적과 실물 투자, 그리고 주가 사이 괴리가 벌어지는 점이다. 애초 ‘빅테크’ 메가사와 글로벌 자금은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확장에 앞다퉈 투자했다. 파운드리, 메모리 반도체(LDDR·HBM 등) 설비 증설이 연쇄적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시장은 이미 ‘실적 모멘텀’을 6개월~1년 전에 반영하며 주가를 올렸다. 이후 실적 발표가 기대치만큼 터져 나와도, ‘오버슈팅’한 주가는 추가 모멘텀 없이 자율 조정 국면에 빠진다.
더 뿌리 깊은 문제는 국내 AI 및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조다. 국내 거대기업은 여전히 글로벌 빅테크의 주문에 따라 움직인다. 한편으론 AI 붐을 국가 성장동력 삼아야 한다며 정부가 앞장서지만, 무리한 투자와 과도한 정책 밀어주기가 ‘축소재생산’의 위험을 키운다. 막대한 국책 자금이 쏟아져도, 실제 고부가가치 신기술 개발이나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으론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번 3분기 호실적은 그 자체로 반길 일이나, 이 흐름이 단기 AI 붐에 기댄 ‘단타용’ 숫자에 불과한 건 아닌지 냉정히 짚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투자자 다수는 “실적은 소문대로 좋지만, 진짜 혁신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를 내놨다. 삼성·하이닉스의 매출 다각화 전략과 AI 서버용 반도체 자체 개발은 의미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시장 논리에 종속된다. 엔비디아와 테슬라 등 초거대 고객사가 언제든 발길을 돌릴 수 있다는 리스크는, 지난 수년간 수출 주도형 경제가 겪은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욱이 AI 투자 열풍이 꺼지면, 국내 시장은 고정비용 급증, 재고 관리 악화, 주가 불안정의 삼중고에 직면할 불씨를 안고 있다.
증권가는 “이익은 앞으로 더 오르나 주가 둔화는 불가피하다”, “실제 AI 수요 성장률과 기업 밸류에이션 괴리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경계한다. 역시 웃는 건 투자수익이 아니라, 당장의 숫자만 채운 경영진뿐이라는 혹평도 흐른다. 실리콘밸리 금융권이 최근 국내 AI 반도체 시장을 ‘과열’이라 진단한 점도 경계 신호다. 단기 실적 호조에 도취한 사이, 실물 기반 신성장 동력과 근본적 체질 개선 없이 파생되는 후폭풍이 기업과 투자자 모두를 동시에 뒤흔들 수 있다.
끝으로, AI 호황은 실체와 환상이 날카롭게 교차하는 현실이 됐다. 호실적의 뒷면, 구조적 의존과 단기 충격에 취약한 산업 현실, 그리고 오래된 기계장치처럼 반복되는 ‘선반영의 덫’을 직시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웃었다는 헤드라인 이면엔, 대중의 돈과 경제정책의 방향을 오독하게 만드는 구조적 착시와 상층부만 배불리는 한국식 성장모델의 한계가 뿌리처럼 교차한다. 무분별한 ‘AI 광풍’에 모두가 휩쓸려 영광과 추락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스템 안에 숨은 거대한 피로감, 침묵으로 들끓는 투자자의 민낯에서 우리가 눈 돌리면 안 되는 이유다.
— 강서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