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인종차별’ 논란, 해명의 진의와 경기장 밖 이슈가 던지는 신호
10월 30일 밤을 뜨겁게 달군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선 그라운드 안보다 오히려 그라운드 밖에서의 논란이 더 강렬했다. 토트넘 핫스퍼의 손흥민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겪은 이른바 ‘인종차별’ 구호 논란 때문이다. 경기장 외곽에서 포착된 장면에는 일부 축구 팬들이 손흥민 선수를 향해 ‘니하오’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중계화면 곳곳에서 팬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고, SNS는 곧바로 인종차별 비판 목소리로 달아올랐다. 이에 대해 문제의 팬들은 해프닝이라며 “니하오가 아니라, 우리 팀 소속 베일리의 애칭 ‘미호’였다”는 주장으로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을 지켜본 취재진과 중립 전문가들은 적극 논박 중이다. 현장음을 여러 번 분석한 결과, 명백히 ‘니하오’로 들려 이를 단순 해프닝 취급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사실 해당 사건은 단순히 프리미어리그 한 경기, 혹은 축구 팬들의 일탈 정도로 치부하기 어렵다. 지난 3년간 유럽 축구계에서는 아시아 선수들을 겨냥한 언어나 몸짓이 적지 않은 빈도로 발생했다. 황희찬이 빌헬름스하펜 원정에서 당했던 욕설, 미토마 카오루가 경기 중 받은 제스처 그리고 일본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조선인’ 비하 발언 등, 각 국별로 방식은 달랐지만 ‘아시아 선수=중국인=니하오’라는 고정관념은 뿌리 깊다. 현장에서 이따금 반복되는 비슷한 발언들이 선수 개인에게 미치는 충격과 집중력 저해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이번 논란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손흥민 개인의 월드클래스 위상 때문이다. 최근 득점력, 리더십, 경기 조직 능력 모두 극점에 다다른 손흥민은 단순한 스타 플레이어를 넘어서 프리미어리그와 아시아 축구를 잇는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종차별 촌극은, 다시 한번 유럽 빅리그 내 아시아 축구인에 대한 인식의 취약함을 드러낸다. 구장에서의 팬 문화, 클럽 차원의 책임, 연맹의 대응 모두 구시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기 내용을 짚어보자. 맨유 원정에서 손흥민은 후반 61분 결정적인 돌파와 프리킥 상황을 이끌었으나, 관중석 이상한 구호로 집중력에 약간의 혼선이 감지됐다. 교체 투입된 직후에도 동료들과 짤막한 눈인사 대신 멍한 표정이 잡혔다. 사후 인터뷰에서는 “경기장 외부 사안에 흔들려선 안 된다”며 태연함을 보였으나, 주변 동료들은 ‘몇 분간 표정이 굳어 있었다’고 짚었다. 이는 선수의 심리상태, 경기 내 컨디션 유지에 미묘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 방송 패널들도 초반 집중력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이 논란을 지목했다.
반면 해명을 내놓은 팬 그룹은, 경기 후 SNS 라이브 방송에서 “니하오가 아니라, 우리 팀 베일리의 별명 ‘미호’를 부른 것”이라며 진화에 힘썼다. 하지만 이 주장이 즉각 납득을 얻기엔 너무나 억지스럽다는 평가가 주류다. 현장영상을 여러 각도, 다양한 팬들이 찍은 영상, 방송 캐스터의 중계 멘트까지 합치면, 3음절로 분명 ‘니하오’가 수차례 나오는 것으로 확인된다. 팬덤, 클럽, 현지 미디어도 논란 진화보다 은폐에 치우친 분위기마저 감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팬 불법 구호나 인종차별적 언행에 대해 구단 책임자, 현장 경비, 방송사 모두가 공동 대응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영국 현지 리그 차원에선 아직까지 명시적 사과문이나 징계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과거 이탈리아 세리에A, 스페인 라리가에서 유사 사건 발생 시 곧바로 징계 절차가 개시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프리미어리그 조직의 안일한 사후조치도 낙제점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아시아 선수와 아시아 출신 팬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분노가 그대로 재확인된다. 코로나19 시절 아시아계 선수·관중을 겨냥한 언행이 급증했던 시기의 기억을 되살릴 수밖에 없다. “손흥민은 더 이상 소수의 이방인이 아니다. 그는 토트넘의 주장이자 유럽 무대를 대표하는 리더”란 최근 영국 언론의 평가와 실질적 처우 간의 괴리가 의도치 않은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경기 결과는 단지 표면이다. 이번 사안이 스포츠를 넘어 사회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를 직시해야 한다. 현장의 언어, 팬들의 무분별한 행동, 클럽과 리그의 소극적 대처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 말뿐인 다양성, 포용의 구호에서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음 주인공 역시 똑같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아시아 축구 선수들의 위상에 맞는 존중과, 실질적 재발 방지 노력이 실현되어야 할 시점이다.
— 한지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