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특이점이 온 대한민국

캄캄하지만 깊은 여름밤, 길고 찬란한 역사의 병풍을 뒤로 한 채 대한민국이 또 한 번 새로운 문턱에 선다. 책 『특이점이 온 대한민국』은 한 편의 거대한 서사처럼, 익숙하던 풍경을 슬며시 들어 올리고 그 밑에 웅크려 있던 태생적 변화의 조짐을 드러낸다. ‘특이점(singularity)’, 과학자 커즈와일이 선언했던 그 말이 이제는 기술 르네상스의 신화가 되어 우리 일상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시대의 기류를 대한민국이 어떻게 끌어안고 있는지 차분히 응시한다.

AI와 로봇, 초연결과 증강현실. 그것들이 한국사회의 경제, 문화, 일상생활 아래 고요하게 자라던 생태를 어떻게 뒤바꿨는지 저자는 차분하게, 그러나 거대하게 조명한다. 재계의 습관들, 교육 산업의 방향, 심지어 주말 아침 브런치 풍경까지 기술이 퍼붓는 변화에 휩쓸린다. 익숙했던 것들은 뒷걸음질치고, 반짝이던 소비의 감수성은 메마름과 설렘을 오가며 새 질서를 기다린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 누군가는 낯설고 누군가는 짜릿해진다. 인공지능 챗봇으로 밥값을 벌고, ‘디지털 휴머니즘’을 논하는 세대는 낡은 기억보다 미래에 집착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변화마저 삶의 한 줄기 ‘바람결’로 치환한다. 뿌리 없이 밀려온 특이점의 바람에 우리는 어디로 닿을 수 있을까.

『특이점이 온 대한민국』은 통계와 사례, 현장 취재를 교차해 사용해 무엇이 실제로 바뀌고 있는지 직접 묘사한다. 서울 한복판의 무인 편의점, 메타버스 학교를 처음 경험한 아이들의 표정, 대형 출판사가 AI 출판에 투자하는 흐름까지, 개별적 단상들이 모여 커다란 물결이 되어 간다. 그 물결은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사람들을 삼키기도, 새롭게 일으키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사장님의 피로한 눈동자 너머에서, 대학교 신입생의 불안한 가슴에서, 아이돌 가상인간의 무표정 속에서—사람들은 과거의 나를 조금씩 두고 온다. 익숙했던 정서와 새로 움튼 욕망이 한 공간에 매달려 결국 충돌하고 화해한다. 책은 그 불편하고 아름다운 진동을 멈추지 않고 따라간다.

기술과 예술, 경제의 경계에서 사람들의 감정선은 더 예민해졌다. 메타버스 전시장에서 머무는 관객의 눈빛, AI 작곡가가 연주하는 신음소리 같은 음악. 언뜻 낡은 아날로그의 잔향이 태풍 앞 갈대처럼 흔들리지만, 마침내 우리는 그 불확실을 끌어안은 채 새로운 시로 들어선다. 저자는 이 굴곡진 변화마저도 슬퍼하기보다는, 문득 환하게 어루만진다. 오래된 한옥의 나무기둥처럼, 변화에 뒤엉킨 우리의 마음도 결국 한 번 더 살아갈 힘을 얻으리라고 믿는다. 『특이점이 온 대한민국』은 미래를 ‘공포’나 ‘환영’ 중 하나로 딱 잘라 읽지 않는다. 희망과 불안을 짙게 끌어안되, 인간다운 ‘그리움’이란 단어로 묶는다. 미래란, 사실 누구에게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풍경이니까.

비슷하게 최근 출간된 『AI에게 미래를 묻다』, 『포스트휴먼의 시대, 인간은 무엇이 될 것인가』 등 AI‧기술 특이점 시대를 다루는 책들은 무엇보다 ‘효율’ ‘시스템’ ‘예측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특이점이 온 대한민국』은 이질감과 충돌, 그리고 적응 사이 어딘가의 미묘한 인간 군상을 꺼내놓는다. 무섭고, 설레고, 아득한, 그러나 결국엔 아주 평범한 우리의 얼굴들을. 미디어, 산업, 사회 제도 등 ‘산업 구조’의 다이나믹 못지않게 ‘감정의 구조’마저 바꿔버리는 거대한 광풍. 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변화 위에 ‘여전히 우리가 우리로 남을 수 있음’을, 잔잔하게, 감정의 붓으로 그린다.

‘특이점이 온 대한민국’. 이 문장은 영화의 포스터처럼 선명한 상상을 불러온다. 도시의 불빛이 강물처럼 출렁이고, 한 청년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새로운 세상의 문턱 앞, 뒤엉킨 불안과 기대는 한때의 청춘처럼 어딘가로 흘러간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곧 그 자리에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난다”는 메시지를 따라, 우리는 불확실에 취하면서도 심장박동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밤이 깊어갈수록, 누군가는 또 다른 내일의 ‘특이점’을 꿈꿔본다. 대한민국—그 오래된 꿈이 다시금 기술이라는 파도와 춤을 추는 이 계절, 나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묘한 설렘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문밖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서평] 특이점이 온 대한민국”에 대한 7개의 생각

  • 이거 특이점 온다는 말 10년 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ㅋㅋ 이제야 실감나는듯요? AI 이슈 진짜 무섭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네요 🤖💡

    댓글달기
  • AI랑 특이점 얘기하는데 인간의 ‘감정’ 운운하는건 좀 구식같아요…🤦‍♂️ 그래도 글은 재밌게 읽긴 했습니다 ㅎㅎ

    댓글달기
  • 사람과 기술의 경계, 그 흐릿해진 풍경을 글로 이렇게 짚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설렘 둘 다 함께 간다는 말, 많은 공감을 해봅니다. 책 바로 읽고 싶네요.

    댓글달기
  • ㅋㅋ 감정의 붓이래… 제목부터 너무 거창해서 기계가 다 해먹는 세상 되면 기자님도 직업 바꿔야겠다 그쵸? ㅋㅋ (농담입니다)

    댓글달기
  • 미래 특이점이라…!! 요즘 모든 게 자동화라 더 게을러지는 중 ㅋㅋ (사실 그게 제일 무섭 ㅎㅎ)

    댓글달기
  • 미래 특이점이라…!! 요즘 모든 게 자동화라 더 게을러지는 중 ㅋㅋ (사실 그게 제일 무섭 ㅎㅎ)

    댓글달기
  • 특이점 와도 적응 못 하는 사람들한텐 그저 남 얘기일 듯… 근데 이 책 보고 조금씩 생각은 바뀔 거 같네

    댓글달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