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이집트, 여섯 남자 아이돌이 소환한 ‘왕자’의 밤
이집트의 뜨거운 모래바람 아래, 각기 다른 빛을 가진 대한민국 남자 아이돌 6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MBN 예능 ‘왕자와 거지’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만남은 고궁의 탑과 유적, 광활한 사막이 둔탁한 붓질로 그려놓은 무대 위에서 각자의 ‘왕좌’를 놓고 벌이는 감각의 축제다. 익숙한 무대 조명 대신 찬란한 태양과 밤의 청량한 별빛이, 인위적 세트 대신 실제 파라오의 시간을 머금은 이국적 거리와 시장이, 이들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TV를 통해 보는 경쾌한 음악방송 무대와는 분명히 다른 결이다. 한국 예능의 흐름에서도 ‘왕자와 거지’는 반짝 아이돌 조합의 유쾌함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사막의 바람에 기대어, 도시의 소음에서 멀어졌기에 더 절실히 드러나는 인간 대 인간의 내밀한 경쟁과 연대. 여섯 명 청년들은 미션에 따라 친구가 되기도, 적이 되기도 하며 서로의 깊은 결핍과 환희를 드러낸다. 제작진이 공들여 던지는 ‘왕자’ 자리를 향한 도전 미션은 단순 예능 형식을 넘어 아이돌이란 존재의 본질, 그 바깥의 인간성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음향은 달랐다. 자주 들리던 함성이나 전자음 대신, 거리에선 낙타 층에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 멀리서 울리는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 그리고 여섯 남자의 서로 다른 웃음과 한탄이 잔잔히 섞였다. 밤에는 사막 특유의 잔열과 초록빛 신호등, 거리 악사들의 즉흥 연주가 어지럽게 춤췄다. 빛과 어둠, 평범한 스타와 진짜 ‘왕자’의 구분선을 시청자도 덩달아 걷는다.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변주를 거쳐왔다. 2020년대 초반부터는 경쟁보다는 성장, 서사보다는 에너지 위주의 극화가 대세였다. 그러나 ‘왕자와 거지’는, 아이돌이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모종의 전통 게임에 오마주를 바친 듯하다. ‘건강한 구도’와 ‘공정한 짜임’ 아래 시청자들도 경쟁의 긴장감과 웃음을 오롯이 체험한다. 무엇보다, 미지의 땅을 무대 삼아 인위적인 자아를 벗고 ‘맨얼굴’로 겨루는 이들의 모습은, 보통의 팬은 물론 일반 시청자에게도 기묘한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남자 아이돌 6인의 캐릭터는 선명히 대비를 이룬다. 그룹과 솔로, 신예와 메인스트림이 서로 경쟁자이자 동료가 되는 장면은 단순한 ‘경연’의 카타르시스를 넘어 한국 예능이 그리는 ‘핫’과 ‘쿨’의 경계, 혹은 ‘진짜와 가짜’ 사이 감각적 경합 그 자체다. 더운 열기에도 각자의 개성을 밀고 나가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낯설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떤 이는 서커스를 연상케하는 즉흥적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또 다른 이는 정공법으로 차근차근 전진한다. 그 과정 속 표정, 손짓, 즉흥 발언 하나하나는 오랜 연습생 시절을 거친 아이돌 특유의 섬세함과 내적 긴장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 시즌이 특히 ‘난리’가 된 이유에는 글로벌 K팝 신드롬의 연장선과, 한국 예능 고유의 친밀한 연출 방식, 그리고 이집트라는 역사와 신화가 켜켜이 쌓인 공간의 힘이 있다. 해외 아이돌 예능이 자주 겪는 진부한 문화 소모나 가벼운 거리감을 피하고, ‘자연과 생생한 공간이 만든 우연의 무대’와 ‘즉석에서 솟아나는 감정의 진동’을 집중 조명했다.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은 결과라기보다 ‘과정’이며, 사막의 해질녘 황금빛이 묻어나는 이국적 풍경마저도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초현실적 감각을 더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이후, 한국 예능 제작진이 글로벌 현지화를 넘어 ‘공간’과 ‘음향적 실재’를 어떻게 새로운 무기로 삼을지 또다른 기대감을 낳는다. ‘왕자와 거지’는 단순 글로벌 콘텐츠가 아니라, 무대와 현실, 경연과 교감 사이 길게 잇는 예술적 실험이다. 우리는 거대한 사막 한복판에서, 쇼비즈니스의 화려함 너머 아이돌이라는 인간의 고민과 욕망, 꿈이 어떻게 진짜 ‘왕좌’를 이루는지 감각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빛, 음향, 움직임, 그리고 건조한 바람의 질감까지 전해오는 이번 시즌은 우리 대중문화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 나아가 예술로서의 재생산성마저 짙은 울림으로 남긴다. 밤하늘 별빛과 아이돌의 미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그 짧은 순간, 우리가 진짜 원하는 ‘왕자’의 자리는 어쩌면 이집트의 사막 어딘가에 이미 빛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서아린 ([email protected])


정말 색다른 시도인 것 같습니다. 한국 아이돌들이 이국적인 장소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리티라니,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한국 예능 고유의 감성을 담아냈다니 기대가 큽니다. 각 캐릭터간의 케미와 경쟁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네요. 이런 시도가 앞으로 어떤 예능의 확장성으로 이어질지도 주목됩니다.
ㅋㅋㅋ 이집트 사막+아이돌=이게 대한민국 예능이지🌴🎤
이런 대형 글로벌 판에 참신한 예능 시각을 녹여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경쟁의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고, 현지의 사운드와 빛이 어떻게 연출에 반영될지 눈여겨 지켜보겠습니다. K팝 문화를 이만큼 이색적으로 풀어내는 것도 또 하나의 진일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