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부 학생, ‘운동 이후’의 빈자리… 방치된 아이들의 교실
고등학교 2학년인 승현이는 오늘도 아침부터 졸린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다. 전국대회를 두 달 앞두고 매일 새벽 자율 훈련에 나가지만, 등교는 출석을 위한 형식일 뿐이다. 담임 교사도, 친구들도 모두 안다. 수업 시간 내내 고개를 떨구는 승현이에게 ‘공부 좀 하라’ 타박하는 사람은 없다. 교실 뒤편에는 승현이와 똑같은 ‘운동부 책상’이 두엇 늘 비어있다.
학교 교육의 본질과 ‘운동선수 학생’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한때 ‘운동이 먼저냐, 공부가 우선이냐’는 논쟁조차 무의미하게 변했고, 이제는 ‘운동 이후’에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기사에서 등장한 ‘E-스쿨’ 시스템은 겉보기에 혁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선수가 교실에 앉아 단순히 재생 버튼만 눌러놓는 것이 현실이다. 승현이 같은 학생의 경우, 낮에는 수업을 흘려보내고, 밤이 되면 소속팀 숙소에서 몸을 회복하기 바쁘다. 축구부, 농구부 같은 인기종목 선수들만이 ‘대학 스카우트’라는 간절한 목표가 있을 뿐, 상당수 종목에서는 졸업과 동시에 진로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최근 교육계와 체육계에 따르면, 학생선수를 위한 ‘이중경력’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 없는 정책 남발에 현장의 마음은 닫힌다. 실무 교사들 사이에서는 ‘운동 이후’를 위한 진로교육이나 심리상담,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생선수가 더는 교실의 손님이 아니라, 학교의 일원으로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
나는 울산의 한 공립고교를 찾아갔다. 운동부 학생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니, 많은 경우 수업 중간에 구글 클래스룸, E-학습터 등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해 있지만, ‘재생’만 하고 노트필기나 토론은 멀다. 감독 코치진은 ‘일단 출석만 해도 다행’이라며 뒷짐을 지고, 담임 교사도 진로상담에 손을 놓는다. 학생들은 자기 신분증을 던지며 “졸업장이라도 받아야지”라고 말한다. 이들의 학업부진은 결국 학업 포기로 이어진다. 월드컵 스타,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한때는 이렇게 운동만 하던 학생이었다. 적지 않은 비중의 학생선수는 꿈이 꺾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른다.
운동부 출신 졸업생 최성민 씨(24)는 “경기도에 있는 C고를 졸업했지만 대학교육도 한 번 못 들어본 채 군 입대 후 생활이 막막해졌다”고 말한다. 직장 구직에 필기시험이 나오면 ‘빈칸 노트’만 떠오른다고 했다. ‘운동부=공부는 포기’가 공식처럼 제도화되고 있지만, 이 간극은 이제 청년 실업·사회부적응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OECD 일부 국가는 학생선수를 위한 경력전환 지원이 촘촘히 이어지고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학교와 협회, 학부모 모두 서로의 책임만 떠넘긴다.
E-스쿨, N-러닝 등 각종 비대면 교육 플랫폼이 도입됐지만, 실상은 운동부 학생들이 ‘존재만’ 하는 데 머무른다. 실질적인 자기주도 학습이나 사회 이해, 적성 탐색을 뒷받침할 인프라와 사람이 부족하다. 실제 대학체육회 한 관계자는 “체육특기생 대입 전형도 점점 줄고, 실업팀 창단도 예전 같지 않아 선수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한다. ‘운동만 시키는 건 남는 게 없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교육현장에서는 운동부가 학교폭력 사각지대가 되거나, 체력 저하·정신건강 문제까지 심화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공부는 나중에, 운동만 잘하면 돼”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위험한 성장 방식이 되고 있다. 더구나 운동 중 부상을 당해 선수 생명을 접은 10대들은 사각지대에 방치되기 일쑤다. 결국 이들은 치유받지 못한 채 사회로 내던져진다.
중학교 3학년인 지성이는 경기가 끝나고 트레이너실에 앉아, “나도 내일 E-스쿨 열심히 듣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제론 의욕도, 돌봐주는 담당자도 없다. 한때 운동장 밖에서 받은 배려와 응원이, 졸업 후에는 “네가 뭘 하겠냐”는 차가운 시선으로 바뀐다. 우리는 아직도 ‘운동 이후’라는 개념을 경험해본 적 없는 사회다. 교육이란 결국 아이 한 명, 한 명이 꿈꾸는 미래의 가능성을 실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도 운동 이후의 삶이 열려 있기를, 그렇게 ‘책상’과 ‘운동장’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