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8m 인공폭포, 루이비통의 도발적 런웨이 실험
한여름 도심 한복판, 기상 관측 이래 역대급 폭염이 한반도를 덮치는 날. 스타일을 사랑한다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이벤트, 루이비통이 새로운 SS27 남성 컬렉션을 공개하는 파격적인 패션쇼가 서울에서 펼쳐졌다. 그 현장은 바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평범함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루이비통답게 한가운데 8미터 높이 인공폭포가 쏟아지는 세트가 런웨이 한복판에 등장했다. ‘자연과의 융합’, ‘창의적 파괴’, ‘미래적 감각’ 등 브랜드의 오랜 테마를 오마주한 듯한 연출이지만, 반전은 따로 있었다. 폭염 경보가 줄기차게 울리는 도심에서 대규모 물 사용, 그리고 수많은 스태프와 관객이 더위에 노출된 채 이 ‘서늘한 쇼’를 관람해야 했다는 점.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도전’이라 평했고, 또 한편에서는 ‘지구온난화 시대에 거꾸로 가는 쇼핑’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루이비통의 이 타임리스 실험은 결과적으로 대담함의 장단을 모두 끌어안았다. 패션쇼는 본질적으로 ‘볼거리’다. 천편일률적인 캣워크에 싫증난 글로벌 패션계는 최근 몇 년 ‘공간의 미학’을 쇼 연출로 적극 전면 배치해왔다. 파리의 루브르, 로마의 고성, 뉴욕의 폐공장, 그리고 한강 위 유람선까지 패션 하우스들은 각자의 해석으로 ‘장소’를 ‘스타일’의 일부로 끌어올렸다. 이번 서울 런웨이 현장이 묘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는 까닭 역시 웅장한 폭포가 절정의 ‘포스’를 발산하며 시각적 압도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하늘색 오버핏 더블브레스트 재킷, 빙글빙글 휘감기는 초록 니트, 광택감 돌출된 PVC 백팩처럼 등장한 아이템 하나하나도 ‘시원함’과 ‘트렌디함’을 입었지만, 무엇보다 압권은 그 공간 자체였다.
하지만, 동시에 패션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엔 예상 못한 ‘역풍’도 불었다. ‘기후 위기의 시대, 럭셔리가 보여줄 수 있는 진짜 혁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이 도마 위에 올라앉았다. 쇼 준비에 사용된 대량의 물, 기계 냉각 장치, 그리고 전광판과 조명 등 막대한 에너지 소비가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한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모 브랜드는 파리 기후협약에 맞춰 ‘탄소중립 쇼’를 실험했지만, 루이비통은 과감히 ‘감각의 혁신’에 방점을 찍었다. 패션이라는 본질을 지키는 과정에서 변화, 그리고 책임 사이 균형점이 무엇인지 여러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환경운동가들은 ‘이중적’이란 선언을, 일부 산업 종사자들은 ‘브랜드 파워의 필연적 선택’이라고 해석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거대한 제약 속에서도 스타일은 결코 머무르지 못한다는 현실, 이런 갈등이 오히려 브랜드의 현 위치를 비추는 거울일지 모른다.
이런 논란 속에도 현장 분위기는 묘하게 열광적이었다. 세계적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수많은 인플루언서와 미디어들이 이 순간을 SNS로 중계했다. 실제 참석한 관람객은 ‘더위도 잊을 만큼 압도적인 공연’이라고 평하는가 하면, ‘쇼 끝나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덥더라’는 솔직한 후기도 꽤 많았다. 기록적 폭염과 갓 쏟아지는 폭포, 그 위를 걷는 모델들의 당당한 워킹은 어쩌면 ‘불편함마저 감수할 만큼 패션은 과감해야 한다’는 한계 테스트일지도. 루이비통은 매번 서브컬처와 올드클래식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공공의 시선이 팽팽하게 긴장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초대권 한 장이 곧 ‘신세계의 입장권’처럼 인식되는 그 공간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봤던 걸까?
다른 글로벌 럭셔리하우스의 최근 동향도 흥미롭다. 구찌는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무려 전기를 최소화한 석양쇼를 선보였고, 프라다는 100% 바이오 소재 런웨이를 시도했다. 반면 ‘밀레니얼+Z’를 타깃으로 매회 ‘핫’한 소셜 이슈를 만드는 루이비통은 아이콘들을 런웨이에 올려놓고, 빅 스케일 오브제를 세팅하거나 협업 아티스트와 자유롭게 노는 ‘플렉스’를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 이런 방식은 확실히 화제성과 바이럴엔 강하나, 크리에이티브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선 고민이 늘 공존한다. 이번 쇼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프닝부터 피날레까지 의상과 음악, 공간이 모두 ‘Big Show’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이는 브랜드의 세계관, 그리고 한국이란 지역의 특별한 의미에 대한, 어쩌면 일종의 러브콜이다.
트렌디한 감각이란 결국 ‘지금-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패션은 한순간 불꽃과도 같다. 루이비통은 이러한 즉시성, 그리고 그 안에 잠긴 모순을 누구보다 절묘하게 이용한다. ‘세상의 모든 뜨거움과, 그 열기를 식히는 운명의 폭포’처럼. 폭염과 폭포, 파격과 역풍. 우리가 기억할 2026년 여름, 패션은 역시 예측을 벗어난다. 그럼에도 차가운 논쟁과 뜨거운 스팟라이트가 교차하는 그 순간, 진짜 패션의 역사가 쓰인다.
— 오라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