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가 남긴 이야기들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로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오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는 소식은 많은 독자와 문학계 관계자들의 안타까움 속에 전해졌다. 일본 현지 언론은 27일 저녁, 히가시노 작가가 향년 68세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만큼, 이번 소식에 더욱 큰 아쉬움과 진한 여운이 남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1985년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이후 <용의자 X의 헌신>, <미래의 이니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현존 일본 추리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3,000만 부 이상의 판매 기록, 번역 출간, 그리고 영화·드라마로의 각색 행렬은 그의 소설이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았음을 반증한다. 그의 작품을 해방 이후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해온 번역가와 출판계 인사들은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 본성의 모순을 치밀한 추리의 언어로 풀어냈다”고 평해왔다.
한국 독자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히 유명한 일본 작가, 혹은 장르 소설가라는 한계로 설명되기 어렵다. 200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본격적으로 번역 소개될 당시만 해도, 일본 대중소설과 본격 추리소설의 경계는 흐릿했고, 추리소설 자체가 ‘오락적’이라는 편견과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스며든 까닭은 인간 개개인의 약함이나 불안, 사회 구조의 틈새, 현대인의 외로운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볼 수 있듯, 사랑과 희생, 그리고 비극적 진실을 다루는 그의 접근은 냉정하면서도 따스하고, 복잡하면서도 일상적으로 흘러간다.
히가시노는 인터뷰마다 ‘추리소설은 범죄가 아닌 인간을 쓰는 것’이란 신념을 강조해왔다. 40여 년간 긴 머리카락을 고수한 채 주목받는 걸 꺼려왔다는 일화, 독자의 직접적 질문에 간략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자신을 소재로 남기기보단 언제나 인물의 내면과 시대의 흐름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 대표작 <백야행>과 <가가 형사 시리즈> 등엔, 일본 사회에 만연한 고독, 신뢰의 결핍, 가족의 복원 불능성, 그리고 도착한 정의의 복잡함이 섬세하게 묻어난다. 그의 저서 중 상당수에서 현실과 픽션, 사실과 도덕,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다. 이는 장르의 한계를 뚫고 문학적 토대를 인정받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최근 일본 추리소설계에선 젊은 여성작가의 돌풍, 사회문학과 순수문학의 결합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 와중에도 히가시노는 스스로 변화를 꾸준히 시도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엔 일상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익명의 편지로 서로에게 기대는 서사가 담겼고, <라플라스의 마녀>나 <악의> 같은 작품에선 과학적 아이디어와 심리학, 법철학이 혼재하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복합적 역사를 탐구한다. 오늘날 한국흥행의 중심인 웹툰·웹소설과 비교하면, 히가시노의 글쓰기는 더욱 느린 질문과 여운의 답변을 남기며 ‘읽는 행위’의 본질에 주목하게 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암 투병중에도 신작 연재와 공익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작가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그의 죽음은 일본 사회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 전체에서 ‘노장 작가’의 역할 변화, 대중문학 시장의 세대교체 등 여러 함의를 던진다.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라는 평가 뒤엔 가족사나 사회의 어두운 단면, 그리고 사랑에의 집착이 지닌 파괴력까지 집요하게 파고든 작가적 집념이 있었다. 히가시노 작품을 사랑한 1020세대와 3040세대 모두에게, 그의 글은 일상의 작은 의심을 거대한 서사로 확장하는 힘, 그리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각자가 자신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 대한 성찰을 남겼다. 올여름, ‘히가시노의 죽음’이라는 새 소식은 명확한 종언이자, 동시에 앞으로의 문학 담론에서 ‘히가시노 이후’를 논의하는 출발점으로 남을 것이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