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가로막힌 헬스케어·시니어 산업, ‘삶’이 한발 더 가까워지려면
45년 전, 서초동 한 작은 헬스케어 창업가는 세상에서 아픈 부모 걱정 덜고 싶단 일념으로 건강 모니터링 서비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2026년인 지금도, 그는 스마트 혈압계와 앱 연동조차 복잡한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웃으면서도 가끔은 울먹인다. 특히 시니어·헬스케어 산업이 한걸음 나갈 때마다 ‘의료법’ ‘보험업법’ 같은 규제들이 덩그러니 솟아 고령자 돌봄 현장 최전선의 주저앉은 사람들을 만든다.
2026년 하반기, 서울에서 열린 한 보험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헬스케어, 특히 시니어 케어 분야가 앞으로 계속 팽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4%를 넘어섰고,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질병이 낯설지 않고, 가족 안에서 모든 돌봄을 품기는 더 어렵다. 스마트워치로 심전도 체크를 해도, 혹은 실버타운에서 AI 돌봄로봇이 새 식구가 되어도, 항상 그 끝에는 엄격한 규제가 옥죄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현실은 통계에서 드러난다. 정부조사에 따르면 2025년 한 해만 만65세 이상 건강·돌봄 관련 실증 사업이 50여건 시도됐으나, 정작 사업화된 비율은 17%가 채 안 된다.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된 건 ‘과도하게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모호한 규제’다. 실제로 헬스케어 스타트업 ‘나이든손길’은 만성질환자 상담 서비스를 준비하다 보험업법상 심사·승인이 18개월을 넘긴 탓에 투자유치가 무산되고, 34개 시범 서비스도 절반 이상이 중단됐다. 실무자들은 “업계가 고도화될수록 규제가 시간과 의지를 잠식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해외, 예컨대 핀란드나 덴마크에선 정부 차원에서 실증특구 허용·표준화된 인증 절차·보험-건강관리 연동 서비스가 이미 일상이다. 스마트워치 심박동 체크 알고리즘이 의료기기로 빠르게 인정받고, 보험가입자가 의료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면 할인 등 인센티브도 부여된다. 실제로 덴마크 케어로봇 업체 ‘엘덴스’ 대표는 ‘정부의 기준이 명확해 사업 전환과 확장이 유연하다’고 말한다. 똑같은 기술, 똑같은 수요를 두고 우리 사회만은 이해당사자 중심의 고정관념과 관료적 절차가 길을 가로막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고령사회’ 그 자체가 모두의 일임에도, 여전히 고령층은 복지정책이나 긴급관리 대상처럼 소외된 상대로만 다뤄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은퇴 후 2년째인 김영자(72)씨는, 만성질환자가 되면서 “병원은 한 달에 한 번, 혼자일 땐 몸이 갑자기 안좋아져도 도움 청할 곳이 없다”며, 사회적 안전망과 개인 건강관리 간의 복합적인 공백을 토로한다. 그러나 관련 서비스들은 우선 장벽부터 만난다. 스타트업, NGO, 지역기관이 아무리 서비스를 설계해도 결국 정책 테이블에서 ‘사회적 합의 부족’ ‘부처간 입장차’라는 이름의 문턱에 멈춘다.
희망적 신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실증특례’ 도입을 시도하고,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의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몇몇 지자체와 민간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건강관리 앱-보험연계형 상품을 도입해, 데이터 보호와 안전장치를 병행하는 등 신중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업계와 시민단체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간병인-의료인-이용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진정한 안전성 기준과, 투명한 모니터링 구조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외친다.
그러나 한 현장 실무자는 “규제를 ‘단번에 풀기’ 보다는, 사회적 안전망·당사자 보호·혁신 보장 세 축이 균형있게 가야 진짜 변혁이 온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시니어 케어 산업의 출발점이 곧 우리 아버지, 우리 이웃의 손을 잡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중장년과 시니어의 삶은 모두가 곧 경험하게 될 보통의 이야기다. 지속가능한 정책 변화는 결국, 담당자나 개발자의 고민만이 아니라 우리 한 명 한 명의 내일과 직결된다.
사람을 향한 기술, 기술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변화와 안전을 동시에 껴안을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모두의 삶이 한걸음 더 가까워질 세상을 위해, 규제의 의미를 ‘안전’에서 ‘포용적 전진’으로 다시 묻는 논의가 지금 이곳에서 진지하게 필요하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