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제 무기공장 부평 조병창의 실체 ‘부평 조선 병참의 별이 되다’

바람에 흔들리는 잿빛 철길 끝, 잊혀진 산업의 그림자 아래 한 조각의 진실이 누워 있다. 부평 조병창—지도로 점을 찍어도 평면적인 ‘장소’ 그 이상을 말하지 않았던 이름. 그러나 이제 이 이름은 다시 살아난다. 새로 출간된 ‘부평 조선 병참의 별이 되다’는 쇳덩이 냄새와 역사 저편의 환청, 그리고 그 속에서 사라진 이름들의 신음소리를 한 꺼풀씩 벗겨낸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독자는 단순한 역사의 발자취를 밟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나서는 한 편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1939년, 일제강점기 조선 땅에 세워진 부평 조병창은 전쟁의 탐욕이 남긴 명령서였고, 어린 노동자들과 피할 수 없던 삶의 무게가 뒤섞인 공간이었다. 오랜 시간 침묵했던 진실이 마침내 책을 통해 말을 건넨다. 공장 내부에 울렸던 쇳소리, 단단한 울음, 휴식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손에 밴 기름때, 그리고 연기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피운 작은 희망 같은 것들—모두가 이곳의 스산한 풍경을 완성한다.

현대의 부평이 한때 활기찬 공장 지대였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이곳이 일제의 군수산업 기반 중 핵심지라는 것도, 그 고통과 흔적이 오랜 세월 얼마나 조용히 은닉되어 있었는지 놓치고 살았다. 저자는 치밀한 사료 조사와 생존자의 인터뷰, 남겨진 기록과 사진들을 모아, 그 허름한 공장 담장 너머 또렷하게 맺힌 역사의 한 자락을 들려준다.

책의 문장은 땅을 밟는 발소리처럼 무겁게, 때로는 바람을 타는 솜털처럼 가냘프게 울려 퍼진다. 한줄 한줄에 스민 감상성과 분노, 연민과 책임의식이 고요하기에 더욱 강하다. 과거를 미화하거나 단순한 피가름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땅이 겪었던 진짜 현실에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묘사가 돋보인다.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은 어두운 방에 들어오는 햇살처럼 조용히 읽는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는 성인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를 기억했다. 어떤 이는 혀를 깨문 채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다. 부평 조병창은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를 체험하게 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인간이 어떻게 그 상처 속에서도 별을 찾아냈는지를 고백한다.

책은 추가로 국가에 의한 망각, 지역사회가 감내한 침묵의 오랜 시간을 꼬집는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산재한 유산과 상흔 위에 새롭게 건설된 도시의 풍경이 어떻게 오랜 흔적을 덮어왔는지, 기억을 지우려던 많은 시도와 반면에 삶을 버텨낸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맞부딪친다.

다른 관련 저작과 달리 이 책은 인물의 서사와 집단적 현장의 감각을 동시에 포착한다. 흘러간 이름 하나하나가 익명성이 아닌, 그 시대를 지탱한 이들의 살아있는 흔적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란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그 사람이 걸었던 길과 마셨던 바람에서 시작된다는 빛나는 사실. 저자는 날련한 시선으로 이곳에서 살아간 이들의 뒷모습을 은유로 감싼다.

책장을 덮고 나면, 부평의 오래된 담벽 위에 비치는 석양이 단순한 저녁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개인’에게 남겨진 시간을 상징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노동자의 손길이 닿았던 철제 파편은 이제 미술관의 유물로 남았지만, 그 손에 남았던 상처는 여전히 우리 마음에 남아 있다.

이렇게 부평 조선 병참의 잊힌 별들이, 오늘밤 별빛처럼 다시 켜진다.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는 별의 흔적이, 낡은 공장 벽을 타고 미래로 이어진다. 역사란 결코 닫힌 책이 아니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 닿아있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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