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칼럼]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전주에서 근무하는 보건소 관계자 최미정 씨는 언제부터인가 ‘보건의료 정책’이라는 것이 더는 중앙정부의 단방향 알림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지방의료원 적자 소식, 인구 고령화로 확산되는 만성질환 관리의 무게, 그리고 돌봄 사각지대에서 위태위태하게 버티는 어르신들의 삶. 『지방정부에게 우리가 실제 병원을 지켜주고, 주민들 손을 잡아줘야 한다는 무게가 넘어왔다』는 그의 말에는 최근 보건의료 현장의 진짜 변화가 담겨있다.

현실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국립의료원 통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기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은 30곳 이상이 만성 적자 상태이며, 지방에서 전문의료 인력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의 의미만으론 이미 현장을 설명할 수 없다. 제주도처럼 섬 지역은 응급환자 이송 문제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의 불안을 일상처럼 견디고 있다. 지방정부 수장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119 구급대와 응급센터 간 조율, 응급실·중환자실 인력난 해소에 매달리는 이유다.

그리고 한참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가파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보건복지의 중심축을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중앙정부가 예산과 정책을 내리면, 지방에서 기계적으로 집행하는 시대는 끝났다. 오히려 현장 주도형, 주민 밀착형 지역의료가 필수임이 확인되고 있다. 경북 칠곡의 장애인 돌봄센터, 전남 해남 치매안심마을과 같은 성공사례는 주민 삶의 결을 읽어내는 지방정부의 역할을 증명했다. 마을거점 건강돌봄, 독거노인 방문약사제도, 농어촌 마을버스 연계 진료 서비스까지, 지역 특성을 파고든 정책 의료가 국민 건강을 지키는 실질적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지역건강을 책임져야 한다는 답이 다는 아니다. 행·재정 자율권의 한계를 절감하는 지자체들이 많고, 의료원 적자 재정지원이 정쟁거리로 번질 때마다 ‘의료가 공공의 영역인가’라는 질문이 음지에서 부활한다. 대전 시민 A씨는 “우리 세금으로 존치시키는 게 맞냐”며 분통을 터트렸고, 반면 충북 괴산의 복지공무원 박정현 씨는 “보건의료 정책은 곧 주민의 생명을 안전히 보장하는 최소한의 계약”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사이에서 정책 의료의 진의는 여러 번 교차한다.

정확히 따져보면, 지방정부 보건의료 정책의 성공은 결국 실무자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전북 부안군의 방문건강관리팀처럼 ‘가장 소외된 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는 이들의 걸음에서 정책은 비로소 힘을 갖는다. 2025년 서울 강북구의 ‘일상건강네트워크’ 사업처럼, 주민센터·복지관·지역 약국이 협업해 만성질환자 맞춤관리와 건강교육, 재택 돌봄까지 통합하는 움직임 또한 민관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손꼽힌다. 하지만 각 지방정부별 역량 편차는 만만치 않다. 경남 모읍에선 수년째 보건소장 구인난이 해소되지 않은 채 임시직 인원이 방치된 사례도 있다.

보건의료에서의 지방자치가 왜 중요한지는 돌봄 한계, 사회적 우울의 현장에서 가장 선명하다. 대구 남구의 한 복지상담사는 “가장 아픈 곳, 외로운 곳에 행정이 닿을 수 있는 연결이 없으면 정책의 의미가 없다”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현장에 발붙인 지방정부 모델이 정책 의료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작은 물줄기를 만들고 있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26년 기준, 지역주도 보건사업의 만족도는 수도권(70%) 대비 비수도권(83%)에서 더 높았다. 주민 스스로 ‘내 건강을 우리 동네에서 지킨다’는 자부심이, 극적인 건강격차 해소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지방 간 보건의료 책임 배분 문제, 예산 배정의 중복, 인력의 수도권 싹쓸이 등은 여전히 해결이 멀다. 의료진 고용 안정, 지역에서의 전문성 유치, 재원 확보를 위한 혁신 등 구조적 개혁 없이는 정책 의료의 의미가 일회성에 머무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경청하고, 현장 적용에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 실험의 자율성을 더 주자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지방정부가 바꾼 정책 의료’는 수치와 데이터를 넘어 실제로 무너진 삶을 되살리는 과정에 있다. 대형 병원의 건설만으론, 화려한 진료 성적만으론, 소외된 지역 주민의 건강을 절대 지킬 수 없다. 진짜 건강은, 커뮤니티가 살아 숨쉬고, 행정이 개인의 삶을 사랑할 때 시작된다는 진리가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동네를 지키는 이름 없는 보건소 직원, 공공의료원 간호사, 복지공무원의 손길이 있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진짜 역할은 바로 이들의 발걸음을 뒷받침해주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한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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