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 따라 병의문턱 달라진다…의료기관 이용 제한에 의료계 반발 확산

서울·경기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주지에 따라 의료기관 진료 또는 이용을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면서 의료계 안팎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일부 대형 병원에 외지 환자 유입으로 인한 진료 병목 현상과 지역별 의료 불균형의 해소를 명분으로, 의료서비스 이용의 거주지 기준 제한 카드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서울 강남권 상급종합병원, 분당·일산 소재 대형병원 등에는 원정 진료 환자가 집중돼 소위 ‘대기 대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방 소도시에서는 진료 수요 부족으로 병상 및 의료 인력이 유휴 상태가 되는 역설을 낳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그러나 일선 개원의들과 보건의료 단체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대도시에 기반한 개원가와 상급병원 측은 환자 의료 선택권 침해와 거주지로 진료 권한을 묶는 정책의 실효성, 그리고 ‘의료 소외 계층’ 발생 위험을 동시에 우려한다. 대다수 전문의들은 “질 높은 치료를 위해 멀리서 오가는 환자들이 있는데, 근거 없는 행정 편의식 제한”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직역단체들도 ‘환자 맞춤형 진료 접근권 보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별 지역별 역할 분담과 의료 서비스 공급의 형평성”을 내세우며, 합리적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취재 결과, 대형병원이 밀집한 서울 강북·강남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외지 환자의 예약 대기일이 90일을 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반면, 지방권 소재 종합병원의 외래 예약은 이틀 이내도 가능한 곳이 많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의료 인프라가 약한 농산어촌 지역 환자들의 경우, 중증 치료나 희귀질환 등 특정 진료 필요시 선택할 수 있는 의료기관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문제의 복잡성은 더해진다. 특히, 지방에서 중증 및 암 환자를 이송받는 국립의료원들은 ‘지역 이기주의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단순한 지역 기준 도입만으로 해결책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병상의 70%가 지역주민 배정’ 등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미 수도권-지방 의료자원 편차와 환자 분산문제는 건강보험 진료제도와 연계돼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5년도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5대 상급종합병원 진료 환자의 35% 이상이 거주지 외 지역민이었다. 복합질환, 중장년 암 환자 비율이 높은 만큼 환자의 선택권과 생명권이 당연히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내과 교수는 “시스템을 제대로 보완하지 않은 상태로 단순 제한을 주면, 환자와 의사가 모두 부담을 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각국의 사례도 엇갈린다. 일본 오사카 등 대도시 역시 인근 현 단위 병원 협의체로 환자 분산을 유도하나, 법적 강제는 최소화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인구 대비 의료 인프라를 확충함으로써 ‘의료 쏠림’을 자연스럽게 줄여왔다. 영국 NHS의 경우, 1차 의료기관을 통한 사전 진료 연계시스템으로 대형병원 접근을 제한하고는 있지만, 예외 조항을 대폭 허용해 의료 접근권을 일부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빠르면 연내 주민등록상 거주지 기반 예약 우선제 또는 진료 제한 시범 시행 등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각 병원별 정보시스템 정비 및 환자 내원 데이터 구축, 주민등록 실거주 확인 방안 마련 등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정보 시스템 등 실무적 준비가 매우 미흡하다는 우려도 높다. 일선 개원가에서는 “거주지 제한이 시행되면, 진료 거부 논란 및 의료 소송 등 새로운 사회적 갈등이 커질 가능성”까지 경고한다. 반면, 일부 지자체와 시민단체는 ‘지역 균형 발전’, ‘공정 의료자원 분배’ 논리에 무게를 싣고 있다.

치열한 공방 속에서도 보건당국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 보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론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실효적인 제도 설계와 지역 격차 완화 없이 사실상 진료 제한부터 시행하게 된다면 의료현장 곳곳에서 환자-의료진-정부 간 갈등 유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의료행위의 본질이 ‘환자 중심’에 있는 만큼, 의료 비용 및 접근성, 인프라 확보 등 총체적 개선책에 대한 논의와 동시에, 환자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현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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